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재의 수요일 후 토요일(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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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며칠이 지나서 메일 박스를 열어보면 가득 찬 우편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우편물을 가려내 보면 몇 가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 많은 광고지와 상업용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 가운데 하나의 신청자만 있어도 성공한다는 생각에서 보내는 것일까?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곳에서 주님의 사업이나 좋은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부탁하는 메일도 있다. 물론 모든 곳에서 필요로 하는 수많은 요구들로부터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대한 어려움도 있지만 나 자신의 무덤덤함과 무능으로 그 내용들을 지나치기 일쑤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메일 더미 가운데에서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혜를 청하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올바른 청지기 역할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어제에 이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상당히 대조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어제는 입으로만 주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면, 오늘은 완전히 다른 희망의 약속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 단서가 붙어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네가 이렇게 한다면,’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사회정의라고 부르는 내용들을 충만하게 표현하고 있다.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이사 58,9-10).

      이럴 때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시리라.”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잘 살아야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런 선행을 배워 실천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자선은 사순시기 동안 우리가 실천해야 할 덕행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다. 물론 물질적으로 궁핍하고 변함없는 의무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재능의 나눔을 통하여 언제나 자선은 가능한 덕행이 되어왔다. 사실 각자의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가치 있는 일상의 삶을 나누는 것이며, 그 가치는 사랑의 하느님을 통하여 간과될 수 없는 선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그것을 나누고자 하는 봉사자들을 위한 계획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재능들은 그 필요한 곳에 사용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현장에 투입되어 무엇인가를 실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의 구체적인 노력과 투신으로 언제나 이루어지는 현실이 된다. 또한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법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여정이 된다.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한 당신의 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나눠주시는 그분의 뜻을 깊이 묵상하며 구체적인 나눔을 준비하고 살아가자.



      (기도)

      나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나에게 주신 당신의 선물 안에서 관대하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우리 주변에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우리가 받은 선물을 나눌 수 있도록 우리의 결정을 인도해주소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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