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재의 수요일 후 목요일(3월 10일)

  • This topic has 0 replies, 1 voice, and was last updated 13 years ago by 정하상성당.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3062
    정하상성당

      생명을 선택하라!


      어느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목소리에서 면담을 요청했다. 그 이야기인 즉, 자신이 우리 본당 신자가 일하는 직장에서 3개월 동안의 임금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 지경인지를 말하는 동시에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본당 신부님께서 그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있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다양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제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종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세의 외침대로 생명을 선택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함을 새롭게 되새겨본다. 그것은 현세의 것에서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입으로는 ‘죽겠다’ 혹은 ‘못 살겠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진정 원하는 표현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입버릇처럼 반어적인 어휘를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죽고 사는 것이 모두 간절한 하나의 열망에서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생명을 선택하라’는 표어는 더욱 더 강력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부활절 아침에 빈 무덤으로부터 밝게 빛나는 빛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간절한 외침이 아닐까?

      세상에서는 ‘삶과 죽음’이 문제라면 신앙인들에게는 ‘삶과 죽음과 새로운 삶’이 자리한다. 이것은 한번 창조된 생명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곧 지상에서의 존재성은 희미해질 수 있지만 사랑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회개와 보속과 절제를 생활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욱 능동적인 자세로 사순시기를 준비하며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예수님의 거절당함과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은 우리에게 어떠한 환호의 순간도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기뻐 즐거워할 수 있는 순간에 찬 물을 끼얹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말씀의 후미에는 ‘사흘 날에 부활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를 위하여 죽음은 더 이상 마지막 말이 아니다. 생명은 언제나 살아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의 인도를 받아 그분의 뒤를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시는 생명을 찾아 나서야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여러 형식의 죽음의 문화에서 벗어나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모세의 외침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

      주님, 이번 사순 시기를 통하여 저의 잘못과 실수와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이것은 단순한 반복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의 덫에서 벗어나 당신께서 주시려고 계획하신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9,22)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