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재의 수요일 후 금요일(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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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연극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협력자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적절한 협력자를 뽑아야 할 것인가?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까? 아니면 열성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까? 혹은 뜻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까? 모두가 필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만족할 수 있는 조합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마음으로 같이 하려는 사람이 아닐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고 했음을 믿으면서.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어야하고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공부에서도, 취직에서도, 돈벌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면 어떨까? 그러나 아무도 신앙생활에서 최고의 영예를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예언자들은 세상의 유명한 시합이나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의 경기에서 실패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은 그럼에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제 3 이사야서는 바빌론 유배로부터 막 귀향하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진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씀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힘주어 이야기한 것은 예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신 것처럼 ‘위선’에 대한 것이었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연기자”가 된다. 연기자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가면을 사용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모든 시대와 장소를 통하여 그분의 백성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분명하게 지적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전례적인 경배를 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곧 겉으로는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 마음이 부족한 외적인 예식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단식과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의 형식을 바라신다. 다른 말로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행하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촉구하신다.

      흔히 하느님께 대한 경배의 모습이나 행위들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한 신심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잘못될 수 있다. 가령 영성체를 하고 나서의 자세를 그려보자. 혹은 성당에 들어서면서 각자의 성호경과 인사와 그 밖의 경건한 행동들을 살펴보자. 누군가를 관찰하여 비평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각자의 신심의 표현이며 하느님을 경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믿음이라는 것은 신앙인의 생활과 마음속에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관계성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조금 더 깊이 묵상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연기를 보여드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기도)

      한결같으신 주 하느님, 당신과의 관계 안에서 저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흘러나오게 하소서. 내 삶 속에서 당신과의 가장 신비롭고 고귀한 관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이끌어 주소서. 거짓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 당신께 나아가게 이끌어 주소서.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마태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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