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사순 제5주간 화요일(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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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우리가 속한 세상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거나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특별한 추억이 생기게 된다면 일생을 두고 그 장소를 기억하며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거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한 사람에게서 비춰지는 삶의 여유 혹은 즐기는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상에서의 삶이 아니다. 모세 역시 불뱀을 보았고 구리뱀을 지팡이에 달아 그것을 바라보게 하였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이로써 하늘 높은 곳에서의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우리에게 내려오신 분을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우리의 비전이 슬프게도 대단히 제한적이지만 우리는 그 유용성을 뛰어넘는 오랜 뒤까지 이어지는 삶의 종합적인 이미지에 우리 자신을 그려 넣을 수는 있다. 우리는 지구의 실제 모습에 따라 둥근 모습이지만 접시처럼 평평한 지구에 살고 있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도 지평선이든 높은 산의 한계점까지든 드물게 각진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둥글게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온 지구에 살아왔다. 21세기에 살면서도 우리가 갖고 있는 우주의 개념에서도 어느 부분은 하늘이 위쪽 어딘가에 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려 보신다는 생각을 하는 고대의 우주관을 간직할 수 있다.

      이것은 현대의 사고방식이나 과학의 발달에 따른 검증에서는 뚜렷하거나 그저 이상적인 생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최종의 목적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거주하고 있는 내 삶의 환경에 영구하게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어떤 특별하고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믿음의 고백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의 끝에 서서 무엇이 보일지에 대해서는 막연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무엇을 획득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기에 잠시 지나가는 세상이 아닌 이 세상 너머에 있는,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어디에든 계시다는 교리에 대해서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나를 준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복음을 통하여 당신의 죽음을 말씀하셨고, 그분의 모습으로 통하여 우리를 그분의 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심을 다시 기억하면서, 성령께 우리의 마음과 눈을 인도해달라고 청해보자.



      (기도)

      주님, 저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당신께 기도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제가 이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오늘도 당신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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