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사순 제3주간 화요일(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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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고해의 문


      간혹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가르치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질문들을 듣거나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는 형식의 질문이다. 그 대답은 “꾸준히 하다보면”이다. 사실 그 순간 알고 싶은 것은 구체적인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간절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대답은 여전히 “꾸준히 노력하다보면”이다.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준비하게 되는 형식은 회개를 통한 고해성사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고해 성사를 통하여 주어지는 재조정과 화해의 선물은 깊이 체험할 수 없게 된다. 화해의 문, 고해의 문을 통과 한다는 신비를 체험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깨닫는 순간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나의 삶의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나약함과 죄스러움에도 용서를 청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용서라는 것은 용서의 힘을 통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서 용서의 에너지가 나간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세상 속에서 용서할 수 없는 혹은 용서하기 위해 이유와 보속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좋은 모범으로 살아가는 행복하고 건강한 신앙인들과 자주 만나는 것은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매정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진정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지 고백해보면 어떨까? 아마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요구를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누군가를 하루에 일곱 번이나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화된 실수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들이 번번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것은 나의 빚을 탕감해주실 때, 내가 누군가를 탕감해준 것처럼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말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삶을 통하여 깨우쳐 주신다.

      오늘 듣게 되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치지 말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다시 해보라는 격려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해보자.



      (기도)

      주님, 당신께서 나에게 주시는 용서가 일흔일곱 번을 넘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치유의 대화와 지혜로서 이해하며, 용기를 갖고 용서할 수 있도록 당신 성령의 은총을 부어주소서. 그리고 당신께서 주신 은총을 깨달아 실천하게 하소서.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노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도와주소서. 매일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뜻이 있다면 놓치지 않고 실천하게 도와주소서. 용서가 습관이 되게 하소서.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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