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사순 제3주간 수요일(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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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폐지가 아닌 완성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확장해서 설명해주시는 산상 설교의 내용을 통하여 확인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설교하시기 전에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라고 하셨다. 이로써 우리가 변화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다. ‘변화’를 내걸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끊임없이 변화를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그 변화에 순응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손가락질을 하기는 쉽지만 변화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말을 쓸 때에는 좋은 순간에만 하나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소중한 선택을 하고 따름으로써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법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법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법은 질서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법으로 인하여 절름발이 혹은 장애를 받고 살아가는지 혹은 법의 수호를 받아 생활하는지는 다양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법을 어겼을 때 법에 대한 갑갑함을 체험하게 된다. 결국 법이 우리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 스스로를 못살게 구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해볼 일은 ‘법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법을 준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법의 가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한다.

      예수님 시절에 법은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법은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눈을 뜨면서부터 잘 때까지 보고 듣고 실천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법과 종교의 법이 나뉘지 않은 상태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감히 하느님께서 주신 법에 동등한 신성 모독으로 법의 변화를 꿈꿀 수 있었겠는가? 누가 하느님과 제단을 두고 하느님의 계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 친히 당신의 법을 수정하시는 분이심을 마태오 복음사가는 알려주고 있다. 그러기에 이제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약간은 신비롭게 느껴지지만 마태오 복음사가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 암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태오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 없이 하느님의 음성으로 듣게 되었으며, 그것이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도 순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계명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중한 말씀임을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법을 내 삶에서 완성시켜나가자.



      (기도)

      주님 당신께서는 육화의 신비로, 여러 가지 가르침으로, 당신의 수난과 부활로 우리에게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셨나이다. 그러니 저희가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확신을 갖고 당신께 나아가는 변화의 삶을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당신의 계명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실천하게 하소서. 이로써 당신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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