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사순 제3주간 목요일(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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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물에 비친 모습들을 통해서 더욱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풍경들이 있다. 야경이 그렇고 알라스카의 사진이나 록키산맥의 사진들이 그렇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서 보이는 석양에 비낀 모습들도 신비로운 색깔과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것은 아마도 자연의 순응적인 모습이 그대로 비춰져서 생겨나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서는 이렇듯 조화와 일치의 모습들이 자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대답은 시기 질투일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생기는 열등감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성당에서나 학교에서 장난을 심하게 치거나 말썽을 부리거나 떠들면 불려나가서 손을 들거나 벽을 보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이런 모습을 경험해보았다면 오늘 그것을 연장시켜서 새로운 상상을 그려보자. 어느 날 기도하러 성당에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늘 있어왔던 의자의 배치가 아니라 모든 의지가 벽을 향해서 일렬로 줄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제대나 감실을 중심으로 그 앞에 나아가도록 배치된 의자가 모두 바깥을 향해서 벽을 보고 놓여 진 것이다. 그리고 본당 신부가 들어오는 사람마다 손짓으로 불러서 각자 벽을 보고 앉게 하였다. 그리고 침묵 가운데 벽만을 응시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우리의 일반적인 공동체가 끔찍하고 시끄러운 불일치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제대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친구들의 얼굴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 고통의 시간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벽의 심리학은 굉장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상의 상황을 묵상하면서 벽과 공동체에 대해서 깊은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쟁들을 떠올릴 수 있다.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갈라진 것은 벽 때문이다. 멕시코로부터 미국이 나눠진 것도 벽 때문이다. 각 지역 공동체들의 문들도 벽들을 갖고 있기에 대화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개인적인 벽들로 모든 마음들이 나눠질 수 있다. 벽들은 작은 목적의 단체들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분리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보호를 위하여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매일 그들을 실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끔찍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벽이다. 미래가 보이지도 않는 벽을 바라보면서 이런 묵상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은 벽을 넘어서 이야기할 수도 없고,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도 없다. 벽은 희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결국 벽들로 인하여 얻어지는 결과물들은 무관심과 곤경과 궁지에 몰리는 삶이 될 것이다.



      (기도)

      일치를 위하여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선물하신 주님,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의 일치를 더해주소서. 당신과 함께 당신 안에서 모아들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어리석게 분열시키는 삶이 되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당신의 불로 뜨거워져 서로 스며들게 하소서. 우리가 사순 시기 동안 당신의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써 당신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온갖 장애물들로 갇혀진 불일치를 벗어버리게 하소서.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루카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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