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사순 제2주간 수요일(3월 23일)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3075
    정하상성당

      경청해야 할 또 다른 실패


      지극정성으로 노력을 기울여 누군가를 도와주었는데 그 대답이 없거나 오히려 배반과 욕설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예레미야 예언자가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 그는 하느님께 순명한 것으로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님 또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또한 두 아들을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어머니의 청원에서도 예수님의 수난과 박해에 대한 귀 기울임은 없다. 결국 누구도 그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이며, 어려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본다. 지금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제일 큰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순 시기의 실천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의 선물로 이루어진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예언을 제자들은 물론 우리들도 이해할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실패이며, 이 실패를 통하여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수난과 죽음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부활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세상에서는 수치와 거북함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영광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경청해야 할 또 다른 실패 곧 십자가에 대한 사랑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더 좋은 표현을 사용하는 게임을 했다. 아들이 먼저,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엄마는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나의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나는 그것보다 더 사랑해요.’라고 선언한다. 그러자 엄마는 ‘나는 너를 가장 많이 최고로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엄마와 게임을 하던 아들이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던지, ‘나는 이 세상 우주만큼 끝까지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엄마는 웃으면서 ‘나는 끝까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를 품에 안으면서 ‘나는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듯이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사랑의 표지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증거 하게 되는 표현이 된다. 십자가는 반지로도, 목걸이로도, 집안의 제일 잘 보이는 벽면에도,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장식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거룩한 사명을 실천하고 그 뜻을 나눌 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이 된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뇌와 수치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빛나는 실패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기도)

      주님, 제가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거짓을 살아가거나 부끄러움을 살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가 나에게 수치가 아닌, 내 삶의 증거가 되게 하소서. 성호경이 가장 완벽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기도와 명상의 깊이가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새겨지게 하소서.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마태 20,18-19)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