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rayer_contemplation 차 신부님의 사순절 묵상집 – 사순 제2주간 목요일(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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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문 앞의 걸인


      흔히 대학에 진학하거나 회사에 입사할 때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나쁜 추천서의 예도 있으니 ‘이 사람은 성적이 우수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이다. 곧 ‘이 사람은 공부는 잘 할지 모르나 그 외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다.’ 혹은 ‘잘 모른다.’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참여와 창조적인 노력과 협동심, 그리고 기여도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은 문 앞에 서서 초조해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매 순간 준비되어져야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학업성적이나 이력서에 첨부하기 위해 노력하는 필수 과정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봉사활동을 통하여 성장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봉사직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으며, 나는 봉사직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나오는 루카 복음의 라자로 이야기는 비유로 꾸며진 이야기다. 이 라자로가 요한 복음 11장에 나오는 예수님으로부터 죽음에서 일으켜진 라자로와는 다른 인물이다. 물론 이런 비교가 오늘의 이야기의 초점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자는 말 그대로 큰 부자였고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라자로는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아마도 매일 서로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이미 알고 있듯이 그 부자는 결코 라자로를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그는 단순하게 그를 무시했을 뿐이다. 라자로는 강아지와 비슷한 처지의 삶을 살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는 햇볕이 들어 따뜻하게 된 집 안의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부자의 집 앞에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무엇인가로 배를 불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라자로에게 부자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된다. 그는 선택에서 안일함과 편안함을 추구하였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등장하는 야곱 멀레이의 유령처럼 생활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살아가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부자는 자신의 처지를 살펴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라자로가 그의 집 문 앞에서 있었던 모습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자는 자신의 형제들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라자로의 부활을 요구한다. 그러자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말을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기적이 없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자선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들 가운데 이사악을 품에 안고 위로와 기쁨과 위안을 주었던 모습을 상기하게 도와준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계명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문 앞에 걸인을 통해서라도.



      (기도)

      스승이요 안내자인 예수님,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존경과 진심으로 당신 생명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은 저에게 영과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의 말씀을 잃어버릴 때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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