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주님 수난 성금요일(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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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52,13-53,12 히브 4,14-16;5,7-9 요한의 수난기 18,1-19,42

      약함 속에 깃든 은총

      봄의 기운을 느낄 때는 강한 싸움을 경험하게 된다. 여린 잎이 굳은살을 뚫고 나오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도 생명을 바라보게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연의 순리가 아닌 우리의 죄와 악행으로 이루어지는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좌절과 암흑이 아닌 새로운 삶의 기운으로 우리를 비추시는 은총의 선물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구원의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은 고통 받는 이들의 주님을 만나는 날이다. 예수님 친히 놀라운 스승도 아니었으며 거룩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직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인간의 육신을 취한 지치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보통 사람들이 걸어 다녔을 더러운 길을 함께 걸어간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게 된다. 배반과 부정과 폭력과 싸움과 시기와 모함과 십자가상에서도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랑의 혁명가였다. 다른 모든 희생의 사랑을 뛰어 넘는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주고, 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비전을 주는 문이 되었다. 이로써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피하지도 달아나지도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에게 짊어진 것을 제자들에게 떠넘기지 않으셨다. 빌라도의 심문 속에서도 그분은 겸손하게 침묵을 지키신다. 본질을 바라보게 이끌어주는 시간이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순간이 된다. 그러나 그의 무죄 속에서도 죄인의 명패를 받게 된다. 그것은 ‘유대인의 왕 예수’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와 달리 모든 것을 마쳤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매 미사 때마다 거행하는 이유가 된다. 이것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성장하고 양육되며 힘을 얻어 새로운 삶의 도전을 만나게 된다.

      십자가라는 형틀 속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게 된다는 것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약함 속에 깃든 승리자의 동행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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