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ission 제1회 선교의 밤 기념 신앙체험수기 당선작 (2) 이 레지나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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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반창고
      정성 속의 나의 하느님
                                                         10
       2014                                 이 레지나

      햇살이 눈 부시던 날, 나는 부엌 창문 앞에 앉아 밖에 늘어진 싱그러운
      나무 가지에서 뒤뚱거리는 아기 새를 보면서 아가야,
      날아다니는 연습하고 있니?” 응원을 보내고 있을 때 창문 방충망에 코를 부벼대며 손짓하는 친구가 있었다. “, 매미야” “, 너 왔구나. 네 노래 참 예뻐!”
      다람쥐들이 버린 열매 껍질들이 나무 밑을 지나가는 내 머리를 맛사지 해 준다. 이제 가을이
      곧 오겠지! 한 해의 끝자락에 오면 나는 왠일인지 코 끝이 찡 해지도록 내 주번의 모든 것들이 정겨워지고
      감격해진다. 이래서 하느님이 더욱 더 그리워지는 이 계절에 반창고 붙여주는 나의 작은 발걸음들을 줏어
      담아보련다.


      내가 이민 생활로 시카고에 발을 디뎠던 1976 3 , 나는
      한인
      성당을 찾았다. 얼마 새롭게 창설되는레지오 마리애의 창단 단원이 되는 은혜를 입었는데 쁘레시디움이 미주 한인 천주교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이라 했다우리들은 주님의 미사를 마치고 레지오 회합을 라면을 끓여 먹고 둘씩 짝지어 활동을 나갔다. 그때 당시 단원 모두가 거의 이민 초기 생활이어서 차를 소유하고 계신 분이 되셨 생활도 안정이 안된 때였다. 우리는 버스를 타거나 어쩌다 좋으면 차를 운전하여 환자를 찾아 나서는데 막상 계시다는 병원을 보면 퇴원하고 계시거나 혼수 상태로 가족없이 혼자 계셨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 하루 해가 넘어 황혼이 되어 집에 돌아 오는데
      뱃속에서는
      꼬르륵 고픈 음악소리가 들려오곤 했다우리들은 아주 서툴렀고 미숙했지만 진지했었는데 이렇게 주님의 , 하루를 보내고 나면
      고프고 피곤 했지만 마음과 정신은 행복해하고 감사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단원들은 성당 이름과 신부님 성함, 전화 번호가 담겨 있는 우리 단원들이 만든 예쁜 병 문안 카드를 갖고 가서 환자 침상 머리에 놓아 두거나 환자, 혹은 쉬는 교우들에게 드리고 왔었다.


      저는 레지오 단원입니다라고 고백할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단원들과 함께 성모님 손 잡고  동거 동락의 신심 생활을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감미로운지를 체험하기에 레지오 마리애
      이웃에게 알리고 싶어 봉헌 해온
      활동
      토막을
      담으려고한. 아주 오래 이야기이다. 눈이 며칠동안 계속 펑펑 쏟아졌던 춥고 추웠던 어느 주일에 혼자 사시는 자매님이 수술을 받으셔서 집안에 갇혀 계셨다. 나는 레지오 단원 형제님 분과 함께 아주 늦은 밤에 그녀의 길고 차도의 눈을 치웠다그리고 다음 날도, 다음 날도 그렇게 했다. 낮에 활동 방문으로 그녀를 찾은 나에게 밤에 어느 천사가 오셔서 눈을 치워 주셨다 눈물을 글썽 거리셨다. 그녀에게 영원히미지의 천사 남아 있는 감사의 몫은 성모님 것이고
      주님의 것이다.

       

      레지오 단원이기에 내 가슴에 안겨지는 활동들은 다양하다. 가정 상담부터 시작하여 임종을 맞는 환자와 가족들과의 만남들인데
      그들의
      고뇌를 함께 맛보며 나눈다. 어떤 때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정서에 사로 잡히기도 하지만 때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심을 체험하곤 한다하느님 섭리에 의해서 임종 직전에 반짝하는 정신으로 영세를 받으시는 분도 계시다. 환자의 변화되는 모습으로 냉담 중에 계시던 가족들이 하느님 품을 다시 찾아 오시기도 하거나 신심이 더욱 깊어지시기도 한다. 어떤 분은 임종 몇 일전에 당신의 가슴속
      깊게 묻혀있었던
      고뇌들을 털어 놓으신다. 그리고이렇게 가슴이 가벼워 줄이야하신다. 나는 그분이 진지한 마지막 고해하실 준비가 되었음을 감지하여 신부님을 모셔 오곤 했다. 사춘기 시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나의 십팔번 기도로서 가슴에 담겨 있었던 시절에 나는
      간호학교 학생이었는데 아무도 찾아 오는 사람없이 혼자 임종의 순간을 헤매이던 환자를 찾아가 손을 잡아주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며 대세를 주었었다. 이 체험은 나에게 이런 활동을 봉헌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방문이거나
      전화를 받거나간에
      활동 직전의 나의 마음 준비는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성모님께서 나와 동행 하시기를 청하면서 주모경을 드린다. 못나고 못난 나의 마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배려 해 주시고 도와 주시는 분은 예수님과 성모님이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의 은총은 건강의 행사 봉사이다. 나는 우리 본당 초기 시절부터 평협 사목회에서 자리만 바꾸어 가면서 오랫동안 봉사를 왔는데 교육부를 담당하고 있던 시절, 나의 생업이 간호직이라서 자연히 맡게된 봉사직이다. 1994년에 본당 신부님의 뜻을 따라 본당을 찾는 유학생들, 방문객들, 그리고 보험없는 교우들을 위해50 명에게 드리는 독감 예방 접종으로 건강의 날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엔 독감 예방 접종은 의사에게 가야만 맞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건강의
      행사는 해가 지나면서 500 명이 훨씬 넘게 접종을 받으시고 9-10 분야의 의료 전문직의 무료 상담, 혈액 검사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검사를 저렴하게 받는 혜택을 마련 주는 통로의 커다란 행사로 성장 했다

      여기서 나는 건강의 행사를 이루기 위한 뒤안길 이야기와 하느님의 손길을 나누려 한다. 본당 교우 의사의 처방 하나로 어떤 약국을 통해 접종 약을 현금으로 구입하여 시작했던 첫해, 나는 성당에서의 접종 행위가 과연 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 조차 모르고 그렇다면 공동체에서의 의료 행사를 누구에게서 허락받고 보고하고 감사를 받아야하나, 만일 생각지 못한 부작용 불상사가 일어나면 누가 책임지나, 실비로 제공하려면 모든 의료 소품들을 무료로 구입해야하는데 어디서 어텋게, 그리고 주사기 통은 어디에다 버려야 하나 등등으로 생각이 많았다. 내가 처음으로 전화 곳이 카운티 보건성 (Cook County Department of Public Health)이었는데  몇번에 걸친 전화로 많은 격려와 자문을 받았고 본당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본당 건강의 행사를 다양하게 하기 위한 실비 제공의 검사와 다른 종류의 검사들을 배려 있는가를 상의 했으나 실패 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근무하고 있던 병원 (러쉬 노스 쇼어 – Rush North Shore Medical Center) 요소 요소 부서에 문의하여 Yes 대답을 받았다그로부터 건강의 행사 주치의는전흥제내과 의사 였고 접종 약은 병원 약국으로 부터 병원이 제약 회사에서 오는 같은 값으로 구입하였고 알레르기 (Allergy) 반응에 대한 응급 조치 약들을 무료로 받았다. 행사 주사기 통들을 병원에다 갖다 버렸고 독감 접종에 필요한 모든 의료 소품들을  무료로 받았다.

       

      나는 행사 전부터 약국장, 의료 소품 담당 책임자, 한인 클리닉 의사들에게 지난 해의 도움에 감사하는 말과 함께 건강의 날이 임박 왔음을 알리고 공급 것과 참여 해줄 것을 확인 받는 작업을 했고 동료 직원 간호원 동원에 힘을 썼었으며 행사 후엔 본당 외부에서 모든 봉사자와 병원 책임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는데
      다음
      해를 위한 협조 부탁을 곁들였다. 서투른 영어로 편지를 쓰는 머리는 빨리도 하얗게
      시어갔다.
      내가 건강의 날을 봉사하면서 얻은 기쁨 중의 하나는 시카고 교구청의 귀띔으로 배운 10 % 자선 행위였다. 건강의 날이 끝나면 밀레제수 선교 시카고 공동체 가족들에게 무료로 접종해 주고 나머지 약과 의료 소품들은 러쉬 노스 쇼어 ( Rush North Shore Medical Center) 병원의 후원으로 생긴시카고 아시안 무료 진료소‘(Asian American Health in Chicago) 보내졌다. 진료소는 처음에전흥제내과의사가 혼자 무료 진료 봉사를 하다가 지금은 아시안 계통의 의사진들로 구성되어 무료 진료가 이어지고 있다.

       

      행사에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이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손길이 영원히 묻혀질 것이기에 공동체 가족에게 알리려 한다. 어느 해
      독감약을 병원에서보다 싸게 구입할 있는 세일 (Whole Sale) 판매처가 있으니
      그 곳에서 구입하라는 여론에
      따라 그곳에 300 명분의 약을 주문했다. 보통 일년 전에 약 주문을 해 왔는데 나는 병원 약국장에게 내년 약은 다른 곳에서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듬 8월 소식은 오직 제약 회사에서 제조된 독감 약만이 미국 연방 정부 보건성 (USFDA) 합격하여 독감약이 희귀하다 했다. 미국, 카나다, 유럽에선 독감 품절 소식으로 소란했다. 매년 10 주일에
      건강의 날 행사를 했는데 Whole
      Sale
      판매처에선미안하다 대답만 약을 구할 도리가 없있다. 그런데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던 독감 약은 유일하게 살아 남은제약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일차로 약이 들어온 것을 나는 염체불구하고 약국장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정말 애걸 복걸하였다. 다만 50 명분 만이라도 나누어 주기를 빌고 빌었다. 행사 주일 목요일이 되었다. 나는 안절부절 했다. 약국장은 이제 나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하느님께 매달렸다. “어찌해요, 하늘에 계신 아빠!” 금요일 저녁에도 소식이 없다. 나는독감약 희귀 (Flu shot Severe Shortage)’ 소식을 알리면서 어쩌면 예방 접종을 같다는 공고문을 성당 복도 벽에 붙여 놓긴 했으나 고민이 이만 저만한것이 아니었다.직장 동료 간호원들을 동원 했는데, 무료 상담 의사들도 오고 혈액 검사 하는 직원도 오는데하면서 정말 안달 박달이었다. 성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에 약국장에게서 전화가 온것이다. 300 도수를 줄 터이니 지금 가지러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아빠, 나의 하느님!” 나는 말을 잃은 채 무릎을 꿇었다.


      하나, 주님께서 미리 아시고 안배하신 일이 있다. 2009년부터 성당 평협 사회복지부에서 이 건강의 날 행사를
      맡기 시작하였는데 2010
      년부터는 독감 약과 의료 소품 구입등등 모든 일을 완전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게
      자립하였다. 그래서 나는 전문직 봉사자 확보 하는데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 병원(러쉬 노스 쇼어)현재의 병원으로 (Northshore University Health System) 흡수 되어진 것이다. 새로운 체계로,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 처음 3 개월동안 이 조그만 규모의 병원 안에서 300 여명의 기존 직원들이 해고 당했음을 생각 보면 내가 건강의 날을 실행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았었어야 했을까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렇게 미리 개입하여 준비 주신나의 하느님, 나의 아빠에게 감사 감사였다.

      주님, 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저를 도구로 써 주십니까!” 고백하게
      하는
      나에게 장기간 봉사 오도록 은혜 주신 다른 신심 활동은 봉성체 봉사이다. 나는 지금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맹꽁이이고 멍텅구리이다. 그런데 그 옛날의 나는 더욱 더 한심스러운 바보중의 바보였다. 그런
      내가 평협 위원으로서 또는 다른 봉사직들을 수행 해 오면서 내 자신의 부족함과 미련함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무조건 열심하려 했고 말을 삼가하려
      했고 어울려 다니는 음식 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본당 안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조언을 찾아 내려고 노력했고 또 이웃 성당에 가서 구경하면 내가 모르고 있는 어떤 지혜나 영성을 얻을 수 있겠다는 소견으로 집에서 가까운
      지역 성당에 발걸음을 옮겼다. 또 어떤 때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시카고 교구청 프로그램 교육에도 참석하곤
      했다. 이렇게 꾸준히 밟아오는 외부 출입에서 줏어 모은 보물들이 본당에서의 나의 봉사 임무를 더욱 더
      충실하게 그리고 잘 이행할 수 있는 거름이 되었었다고 믿기에 나의 신심 행위를 살짝 들쳐 보련다.

       

      1980 , 우리 정하상 바오로 성당의 탄생 움직임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몰톤 그로브 (Morton Grove) 살면서 어린 아들들과 함께 근근히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영어가 아주 서툴렀었기에 근처 성당인
      St. Isaac Jogues 가끔 평일 미사에 참석하여 제일 좌석에 앉아 성경 봉독할 속으로 따라 읽어 내려 가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교우 한분과 신부님의 초대로 시카고 교구청 규정의 봉성체 (Extraordinary Minister of Holy Communion) 교육을 받았다. 주어진 일정대로 짝을 지어 근처의 양노원을 방문하였고 집에 계신 환자를 방문하기도 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성향에 따라 방문 준비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데 가슴 뭉클 하도록 감명 받은 경험 하나를 나누려 한다. 나는 환자를 방문할 당일 오전 미사에 참례하고 강론을 받아쓰고 주보를 갖고 간다. 간단한 기도를 바친 환자에게 부인과 함께 날의 복음 말씀을 낭독하도록 하고 강론 말씀을 전달 주었다. 그리고 복음 말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주일 간의 생활 이야기를 곁들이고 혈당 수치와 혈압을 재어 드리면서 대화가 무르익곤 했다. 나는 배운대로 성찬 전례의 양식을 따라 기도하고 성체를 모시게 했다. 환자는 산소 호흡에 의지하시는 백인 할아버지셨는데 그는 평소에 산소통을 어깨에 매시고
      봉성체
      환자 방문을 오시던 분이시다. 나는 그분이 산소 흐르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결로 성체를 모시려고 눈을 지긋이 감고 무릎을 꿇으실 보였던 그분의 얼글 모습은 나의 영혼을 뚫는 성스러움과 거룩함 자체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분의 얼글 빛을 보면서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 영광 받으소서!’ 속으로 외치면서저에게도 이런 은총 주십시오 연발하곤 했다. 이 체험은 내가 어텋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었다.

       

      나는 글렌비유(Glenview)
      이사를 했다. 지역 본당인 St. Catherine Laboure 성당을
      찾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는데 내가 그 성당에 깊숙히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본당에서 구역장 봉사를 하고 있었었다. 나는 그곳에서 실시하는 피정에 참여했고 소수 민족 문화 축제에도 참여했다.
      당시 그 성당에서는 일 년에 두번씩 봄 가을로 여성 피정과 남성 피정, 4 차례의 피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모든 피정은 평신도들로 이끌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피정 봉사팀에 함께 할 것을 초대 받았을
      Yes 를 하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기를 몇 년 했다. 이렇게
      저렇게 습득한 지혜와 견문들, 그리고 영성 갈증의 재 충전된 에너지들을 색동 주머니에 차곡 차곡 소중하게
      담아 곱고 고운 보물 주머니를 만들어 성모님 가슴에 안겨 드렸더니 성모님께서는 내가 필요 할 때마다 그 주머니를 열어 본당에다 하나씩 둘씩 꺼내
      쓰게 하시곤 또 다시 그 색동 주머니를 그득하게 채우셨다. 나는 고백한다. 하느님 사랑하는 일이 무엇이던지간에 내가 성모님 손만 붙들고 함께 가면 주저할 것 없다고~~~. 실천하는 사랑의 성의를 봉헌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엄마와 아빠,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신다고~~~.


      윌멧(Wilmette)으로 이사온 나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요셉 ( St. Joseph Parish) 성당에서 봉성체 봉사를 해 오고 있는데 체험 하나를
      나누고 싶다. 나는
      매달 월요일에 스코키 병원을 방문하고 화요일마다 교우 집을 방문하는데 2014 일월 월요일 병원 방문 때가 기억난다. 세상이 속에 잠기고 라디오에서는 강추위 눈보라와 추위 온도 영하 화씨 44 도를 알리면서 왠만하면 외출을 삼가라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정월 월요일에 병원에 계신 환자들을 찾아 갔다. 나의 방문을 받은 환자들은 하나 같이 탄성을 올렸다. 어텋게 눈보라 속에 왔느냐, 어제(일요일) 가족들도 오지 했는데, 성체를 모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는데 하면서 반가워하는
      환자들에게 나는하느님께서 운전 주셨다 대답했다. 그날 나는 내가 만났던 모든 환자들로부터 축복의 말씀을 받았다. 내가 그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전달하러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하느님을 보게 것이다. 나의 미소한 정성이 이웃에게 갖다 주는
      그 기쁨의 맛을 나도 그들과  함께 맛보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을 찬미 찬송했다.

       

      아픈 이웃에게 작은 반창고 하나를 붙여주는 나의 소박한 정성, 그 정성에 성모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해 주시면 그 작음은 이미 그 분의 것이 되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은총으로 변함을 나는 체험하곤 했다. 그 때는 나라는 존재는 이미 그 분안에 흡수되어 있음도
      피부로 느끼곤 했다. 이러한 작은 반창고의 정성을 부풀게 하시는 그 분께서 나를 이끌어 가신 곳이 있다. 그 곳은2003 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께서 수도 단체로서 세계에 공표하신 밀레 제수 선교회라는 천주교 꽃 밭에서 가장 나이 어린 수도회다. 이 선교 단체는 휘닉스에서 꾸르실료를 받은 전문직을 갖은 몇 명의 청년들이 공동 생활을 하면서 꾸르실료 지도
      사제인 두란 신부님을 도와 꾸르실료를 돕고 교구청의 프로그램인 청소년 지도에 힘을 합하면서 탄생한 선교 단체이다.
      스페인에 있는 클라렛 수도회(Claretians) 사제이신 두란 신부님은 꾸르실료를 영어로
      번역하시어 미국에 소개하시고 미주 울뜨레아 잡지까지 창안하시고 발간하셨는데 이 꾸르실리스타 청년들이 함께 했으며 그들은 시카고에까지 원정와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꾸르실료를 소개했던 분들이다. 1964 1 12일이 밀레 제수 선교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생일 날이다.

       

      나는 2000 년에 로마 성지 순례 갔을 때
      알게 된
      이 선교회 꾸준하게 관계를 맺어 왔었는데 어느 해 나이제리아와
      슬로바키아에서 선교 생활하시다가 시카고 공동체로 오신
      보타 신부님( Fr. Paul Vota)을 만나게 되었다. 밀레 제수의 첫 사제라 했다. 그분은 나이제리아 선교 생활 때 감염된
      이름 모를 촌충들과 뒤 늦게 생긴 복강안에 열 몇 개의
      덩어리로 병색이 짙었고 시카고 교구청 건강 보험을 갖고 계셨기에 이곳으로 오셨다 했다. 치료 불가능을
      선고 받았고 발작처럼 치솟는 고열과 복통으로 고생하시는 신부님께 반창고 붙어드리는 나의 작은 정성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공동체 가족들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모습을
      깊숙히 들여다 보게 되면서
      받은 감명이 깊어 갈 때 그들의 초대를
      받았다.
      2009 자비의 주일에 나는 보타 신부님 손을 잡고 하느님 앞에서 뒤늦게나마 순결, 청빈을 맹세하며 밀레제수회의 재속 가족으로서 (빙꿀름 가족 -Vinclum
      Member)
      허원 했다. 그리고 보타 신부님께서는 바로 그 해 추수 감사절 날 새벽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허원은 그리스도 신앙안에서의 나의 삶에 매우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며 이 허원 마음엔 레지오 단원으로서 성모님을 닮아가게 하는 마음이 담겨 있고 마음은 우리들의 아픔에 동참할 있는 하느님의 마음이 담겨있고 이웃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복음 선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최근에 하느님께서 본당 신부님을 통해 주신 자비는 성체 분배 봉사자 팀으로 초대
      해 주신 것이다. 정말로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죄인이고 나약하기만 한 티끌인데 주님께서 쓰시니 황송
      할 뿐이다. 그러기에 나는 더욱 더 조용 해 지고 안으로 깊어지기를 열망하며 기도한다. 우리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공동체와 더불어 숨을 쉬면서 내 신앙을 엮어 나가도록 이끌어 주시는 사랑이신 나의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내 여생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반창고 붙여
      드리는 나의 겨지씨만한 정성을 성모님 손 잡고 그 분께 봉헌하고 싶어 자비와 은총을 구한다.

       

      어느 자매님 두분께서 수술 받으실 때 본당 가족들의 고리기도를 묶은 아름다운
      카드를 드린 적이 있다. 그 카드에 우리 신앙 공동체 가족들이 베푸는 그 기도의 사랑이 고마워 내 마음을
      표현한 감사 노래를 이곳에 옮겨 놓고 이글을 끝낸다.

       

      주님을 닮으려는 우리가
      그분을
      가슴에 담으니,

      주님이 우리 마음 안에 오시고

      우리 마음 안에 주님 계시니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네.

      우리 안에 주님 계시니 우리는 주님 안에 하나이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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