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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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에제 34,11-16 로마 5,5-11 루카 15,3-7

       

      섬기는 삶

       

      누가 뭐래도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못나고 잘못을 했더라도 미워하지 않고 변호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나는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서 정확하게 그 뜻을 새기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신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과 나의 육신의 부모님을 통하여 그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시라는 것을 새삼 느껴보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고백을 이렇게 어리석게 표현하는 것은 나의 모습이 잘못되었어도 다시 자리를 잡아주시기 위해 더욱 사랑해주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자애의 순교자라고 불리는 다미안 신부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하와이에 뭍혀 있고 몰로카이의 성 다미안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성심회원으로서 살았던 다미안 신부는 예수님의 성심을 가장 길게 살아온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16년 동안 나병환자들 속에서 살았으며 나병환자로 죽게 되었다. 오늘은 특히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 역사의 풍요로움에 감사하며, 지금의 나의 봉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날이다. 1독서에서 선포되듯이,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라고 표현되는 목자와 양의 관계 속에서의 섬김이다. 목자는 양의 주인이 아니라 양을 살찌우고 보호하며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봉사자다. 이런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오늘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었음에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신 사랑의 순교자 예수님을 오늘 십자가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희생 제사를 통하여 모든 백성을 하느님의 사랑의 기쁨 속으로 초대하였고 무거운 짐을 몸소 짊어지신 것이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의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쁜 소식을 어떻게 세상 속에서 바라고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우선 우리는 다음의 기도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요한 19,37). 우리가 예수님의 성심을 제대로 바라보며 기도하고 묵상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우리 안에 사랑의 삶이 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도와주시는 성령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캘커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썼다. ‘나는 하나의 역설을 발견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상처들까지 사랑한다면, 더 이상의 상처가 아니라 더 큰 사랑이 있을 뿐이다.’ 그녀 역시 자애의 순교자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걸어가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또한 나는 누구를 섬기고 있으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오늘 내가 주님의 성심을 바라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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