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9주간 화요일(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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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2베드 3,12-15. 17-18 마르 12,13-17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예수님의 실수를 바라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율법의 거절이든지 로마인들에게 순종할 것인지의 어려움을 놓고 덫을 놓는다. 어떤 대답을 해도 빠져나가기 힘든 문제를 들고 와서 넘어트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덫에 걸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삶의 다양한 지역들 속에 담겨진 어려움의 조정을 위해 설명을 해주신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에 합법적인 요구를 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카이사르와 하느님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이로써 ‘무엇’과 ‘어디’에 대해서 분별해주시는 것이다. 여기에 이성과 신앙의 자리가 놓이게 된다.

      우리를 위하여 주어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 됨의 길은, 우리의 모든 것과 모든 방법들과 놓여진 길들은 모두 하느님의 것임을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는지를 알고 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는 생계형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고 어떤 일들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행해야 하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에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께 보답하는 것이 된다.

      오늘 우리는 유스티노 성인을 기억하고 있다. 성인은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것에 대한 균형을 위해 노력한 분이다. 그런데 둘이 상충하면 하느님을 선택하였다. 유스티노는 진리를 찾아나서는 이방 철학자였다. 그는 공부를 통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모습을 통하여서도 우리가 세상의 논리와 하느님의 길이라는 선택에 놓이면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선택에서 이런 모습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닐뿐더러 선택의 어려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성령께 기도하며 분별을 할 수 있고, 용기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하느님의 뜻에 항구하게 뿌리를 내리는 자리임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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