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6주일(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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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예레 17,5-8 1코린 15,12.16-20 루카 6,17.20-26

      민수 6,22-27 야고 4,13-15 루카 12,35-40

       

      희망

       

      한국에서 지내는 설날을 이곳에서 또 한 번 맞이한다. 아마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와 전통을 잘 알고 그 속에 담겨진 참 뜻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매일 새롭게 거듭난다는 설날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날에 맞도록 주님께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다. 그것은 우리가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종말론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매일의 삶이 주님 안에서 완성되고 하나가 되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다. 오늘 루카 복음에서의 주인은 섬기는 자로서 등장하게 된다. 그것의 의미를 새겨보면 주인은 종들에게 늘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잘 느껴지지 않더라도 주님의 보호와 은총은 항상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다는 말이다.

      주님께 마음을 두고 살아가면서 세상을 파괴할 수는 없다. 사람을 업신여길 수는 없다. 서로 미워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주님이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흔들림 없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희망을 지니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도 바로 이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희망은 세상이 바라는 치유의 열쇠가 될 것이다.

      요즘의 세상은 경제가 신격화 된 듯하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결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현실의 무게를 이겨낼 힘도 바로 희망이다. 사실 축복을 빌어주는 것도, 내일에 대한 막연함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 안에 희망을 두기 때문에 축복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이미 충만하게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과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무엇이 진정 행복한 선택이며 삶인지는 각자가 고백할 수밖에 없지만 내 삶의 모습 자체로 축복을 내려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을 신격화 시키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곧 다가올 우리의 완성에 희망을 두면서 오늘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옛날에 어느 사냥꾼이 있었다.

      그는 독수리를 잡으려 화살을 겨누고 있었건만, 그 독수리는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봤더니 독수리는 뱀을 잡아먹으려고 그 뱀을 쳐다보느라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뱀도 마찬가지로 어딘가를 응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도무지 독수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노려보고 있었다.

      무당벌레도 꿈쩍 않고 있었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에 정신 팔려 개구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냥꾼은 이러한 먹이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려놓고, 갑자기 자기 뒤를 쳐다보았다. 혹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잡아먹으려는 것은 아닌가. 사냥꾼은 볼 수 없었지만,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적 아닌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모래시계다.

       

      오늘 세상에 필요한 희망의 복을 심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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