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32주일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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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열왈 17,10-16  히브 9,24-28  마르 12,38-44

      배고품을 아는 삶

      그 어떤 사람보다 큰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자신이 그 맛을 알고 있거나 그 모습을 살필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모습은 투명하고 간단 명료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간절함을 체험해본 사람은 누군가를 거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려움을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삶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하느님의 나라에 적합한 조건들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에 찌든 모습은 이것과 다를 수 있다. 이것은 돈이 많은 사람에게도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질적인 가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첫번째 발자국이다.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믿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 예수님도 당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 놓으실 때, 두려움을 넘어 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로써 하느님의 정의는 실현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하느님께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결국 가난한 과부의 봉헌은 자기의 소유에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를 봉헌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한편 우리의 어떤 봉헌도 하느님의 존재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주님께 나 자신의 봉헌을 드리는 이유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의 자기 증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때, 지금 내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어려운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라는 딜레마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또 다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자는 해볼때까지 해볼 것이다. 그런데 무모해보이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더 이상 손해 볼일은 없음을 주지해야 한다. 진정한 배고품은 주님께로 나아갈 때 깨닫게 된다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내가 미사 때마다 봉헌하는 정성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행위이며 동시에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이다. 아울러 교회 공동체를 위한 자기 기여가 되는 것이다. 액수나 양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봉헌이 전적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의 헌금 혹은 봉헌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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