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30주일(10월 25일 / 미국 가톨릭의 청소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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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예레 31,7-9  히브 5,1-6  마르 10,46-52

      위안을 주시는 하느님

      우리가 눈을 뜨게 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았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또 다시 눈을 뜨게 되었는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매 순간 눈을 뜰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에게 황금과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을 닦고 뜰 수 있기를 오늘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청소년 주일을 제정하였음을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로 우리가 어디서부터 치유를 받아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같이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변화도 민첩하게 알아듣기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주님께 길을 보여주십사고 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가 믿는 주님께 다가서는 시작을 해보자.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는 근본적 이유는 그 속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에게서 위로와 힘을 얻고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 개개인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소경 바르티매오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자 많은 이가 그를 꾸짖고 나선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크게 주님께 의탁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더이상 막지 않고 예수님께 인도한다. 여기서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신중함을 지녀야 함을 느끼는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께서 나를 원하시면 그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신앙을 빙자한 세상의 놀이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을 따르는 길에 나아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멍애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코 깨질 수 없는 유대로 우리를 감싸주시는 분께서 오늘 나에게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라 그리고 일어나 주님께로 나아오너라!’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영광을 차지하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 누구도 스스로를 위해서 혹은 스스로 거룩해지지 않음을 강하게 알려주는 말씀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선택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이 선택에는 목적과 뜻을 섬기는 자세가 어우러져야 한다. 

      사실 우리는 한번도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그래서 아름다움과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삶을 허비할 수도 있었음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성은 앞으로 나아가는 지렛대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안해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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