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3주일(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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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35,4-7  야고 2,1-5  마르 7,31-37

      새로운 세상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고 아파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살아왔는가? 만약 내가 어떤 사고로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사실 내가 아파봐야 그 사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내가 남과 다를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랑의 마음과 배려의 마음을 몸에 길들이기만 해도 된다. 

      가난한 사람을 부르시어 신앙 안에서 부자로 만들어주시고 하느님 나라의 자손이 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다가올 놀라운 세계의 비젼은 어떻게 해석하게 되는가? 인간은 두개의 자를 갖고 있다고 했는데, 나의 기준인 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내가 배우고 익혀온 것이 대부분 남이나 다른 것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것에 맞춘 잣대질일 뿐이다. 

      집을 다시 구성하게 된다면, 리모델링을 하게 될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하고 싶은가? 혹시 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떠할까? 시대성에 맞는가? 분위기에 맞는가? 원하는 방향은 어떠한가? 색상과 디자인은? 이처럼 집의 내부를 개조할 때도 상당한 비젼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한가지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면, 그 속에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모습이 주님의 모습과 어울리도록 새롭게 변화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가난과 빈곤은 다른 것이다. 가난은 어떤 일시적인 혹은 부분적인 부분의 문제라면, 빈곤은 지속적이면서도 총체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어려운 경제 사정의 회복도 시간만이 해결해줄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 빈곤 혹은 가난도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물질적인 가난, 정신적인 가난(외로움, 도움을 줄 친구가 없음, 관계성 혹은 사회성의 부족, 죄의식의 부족 등등), 영적인 가난(죄의식의 결여, 하느님의 부재, 일상 생활의 어두움)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의 간단한 접촉과 말씀 속에서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듯이 우리 안에서는 더욱 큰 변화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풍요로움을 전해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래서 우리가 생활하는 이 곳이 새로운 세계, 곧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복음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열려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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