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3주간 월요일(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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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코린 5,1-8 루카 6,6-11

       

      세상 속에서 주님의 모습 살아가기

       

      이교인들의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된 공동체가 코린토의 일반적인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주의를 듣게 된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그리스도를 새롭게 힘입어 좋은 증거를 살아갈 수 있도록 강력하게 지시를 받는 것이다.

      “ 한 소녀가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을 들고 집에 왔습니다. 소녀는 깡충깡충 뛰어서 엄마가 요리하고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어요. ‘엄마, 이게 뭐게요?’ 소녀는 그림을 공중에 흔들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지요. 엄마는 소녀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어요. ‘뭔데?’ 엄마는 끓는 냄비만 보고 있었어요. ‘이게 뭐게요?’ 소녀가 그림을 흔들면서 다시 말했어요. ‘뭔데?’ 엄마는 접시들을 만지면서 물었어요. ‘엄마, 내 말 안 듣고 있잖아요.’ ‘아니야, 듣고 있어.’ ‘엄마, 엄마 눈은 딴 데 가 있잖아요.’” 미치 앨봄 <8년의 동행> 중에서.

      이렇듯 나 자신은 주님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너무나 쉽게 혹은 곁에 주님의 말씀이 있기에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구원의 때가 다가오기 전에 회개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기회주의적 생각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삶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지시문들이 있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반 지침서에 불과하다. 진정 중요한 것은 정확한 처방과 상황에 맞는 무엇인가를 내가 실행하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작용되는 순간이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치유를 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나 자신의 현실을 비춰본다.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많은 어려움을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안식일의 정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묵상하고 고민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삶의 모습들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화를 거듭하여 평화롭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장 무엇인가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제거해버리려는 단순한 생각은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악한 행위의 근본을 제거하는 것이지 단순히 사람을 제거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사람과 그 행위가 하나가 되어 나쁜 행실을 일삼는 경우는 격리해야 하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영으로는 함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 속에서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는 계획을 듣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자만에서 이뤄진 일임을 일깨워주면서, 새로운 반죽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 새 누룩은 순결과 진실로 준비되는 것으로써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가 자리하는 삶의 모습임을 고백하면서 오늘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아가자.

      묵은 신문은 그 자체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오늘은 오늘의 신문으로 새롭게 맞이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서 지나간 과거나 고집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한 팁이 될 것이다. 대신에 매 미사 때마다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치유해주시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어보자. 우리에게 자선을 베푸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소중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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