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3주간 금요일(9월 10일)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284
    정하상성당

      1코린 9,16-19.22-27 루카 6,39-42

      하느님께 인도하는 지렛대

      인간이 발명한 기술 가운데 지렛대와 도르래의 역할은 대단한 것이다.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술인 동시에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지혜를 발견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이처럼 유용하게 살아가는 역할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오늘 바오로의 모습을 지속적이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겸손을 목격하게 된다. 그의 복음 선포는 자신의 겸손과 직결되는 하나의 의무가 된다. 만약 누군가 강의를 청하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을 때, 청중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호소력이 있는 사람을 고른다면 어떤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 사람들의 필요를 알기 때문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필요한 요소를 채워주며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 학생 때 특강을 맞이하게 될 때 여러 강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기억에 나는 사건은 유명하다고 해서 모두에게 호소력이 있거나 글을 잘 쓴다고 해서 강의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 모든 특강 강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강의의 모든 내용을 표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확신이 서지 않는 믿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내가 몸소 체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병을 앓고 이겨냈다면 나중에 그런 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달래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얻게 된 결실을 나누는 것이며, 삶의 가치와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단련과 절제라는 부분이 필요하게 된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다.

      나에게 맡겨진 직무가 복음의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세상에도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주님처럼 대한다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뢰감이 있거나 부모처럼, 혹은 존경하는 멘토나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바오로 사도의 선교 생활 속에 담겨진 부분이라면, 우리에게도 복음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라는 메시지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결국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하는 삶의 모습으로서 누군가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그들의 종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른 증거적 삶을 통하여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으며,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기에 그들은 그를 믿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의 분열이 없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나누는 삶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눌 수 있는 복음의 증거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오늘이 되자. 우리가 신앙을 갖는 이유도, 이처럼 살아가는 이유도, 어려운 순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하도록 하자.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