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2주간 수요일(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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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코린 3,1-9 루카 4,38-44

       

      나의 하루 일과

       

      방학 생활 계획표를 짜다보면 빈틈이 없을 만큼 많은 계획들을 세우곤 한다. 신부가 되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일일 생활 계획표를 작성했을 때에도 교본적인 삶을 지향했다. 그런데 그것을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지금은 사제의 마음과 정신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에 하나가 되기를 바라볼 뿐이다. 혹 휴가 계획을 짜더라도, 여름 캠프 프로그램을 짜더라도 계획상의 프로그램과 실제 활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 목적이 같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행복하고 기쁘고 건강하게 그리고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공동체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자주 있다. 어떤 위기감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너무 철학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생활이 아니더라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정신이 담겨진 생활의 계획표를 짜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육적인 사람으로 길들여진 우리의 본성에 영적인 삶, 공동체적인 삶으로 나아가도록 초대하는 바오로를 만난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음을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쉴 틈 없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주신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자로서의 삶이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는 열심하다는 이유만으로,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파벌을 만들거나 배척하는 경우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무리들만이 주님을 더 잘 따르고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사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 혹은 새 영세자들이 바라볼 때 기존의 신앙인들의 모습은 무엇인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습의 가치를 스스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존의 신자들은 주님의 뜻을 살면서 그 빛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바오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신비를 깨닫는 사람이라면 육적인 삶을 따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들의 필요를 도와주거나 도움을 받는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타인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의 초대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나의 하루 일과표를 세우거나 살아가는 모습의 다소 차이나 변경이 생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복음의 전달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의 시간표를 짜보는 오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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