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1주간 수요일(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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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2테살 3,6-10.16-18 마태 23,27-32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실천하기

       

      나는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진실 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영성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깨어 있음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기에 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잠들어 있거나 게으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안소니 드 멜로 신부의 이야기 가운데, “어떤 점잖은 어른이 아들의 방에 가서 문들 두드리며, ‘얘야, 일어나거라!’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아버지가 소리칩니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왜 싫어?’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첫째 거긴 너무 시시하고, 둘째 아이들이 성가시고, 셋째 전 학교가 싫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그래, 그럼 난 네가 왜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세 가지 이유를 말해 주마. 첫째, 그건 네 의무고, 둘째, 네 나이가 마흔다섯 살이고, 셋째, 넌 교장이기 때문이다.’ ”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치유가 아니라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삶의 위기가 이렇게 다가올 수 있다. 모든 것이 자라나게 도와주시는 분께서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시면서 각자의 소임에 충실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무엇을 처음 배울 때 외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면 질문하면서 배워나가면 그만이다. 결국 내 안에 하고자하는 원의가 있느냐 없느냐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또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말과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진실이 드러나는 참된 행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행복지수를 찾아본 결과 불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타인을 의식하는 것, 곧 체면치례라고 지적한바가 있다. 이로써 자신의 부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경하며 멋들어지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조상들의 묘를 꾸미면서 자기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행동으로 옮기는 자선이 하느님께 집중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도 그를 집중해서 보시는 것임을 깨닫기 바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마스크만을 쓰고 살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위선자들의 모습을 비판하시는 예수님을 마주하면서, 나 자신은 교회의 일원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진정한 마음의 희생으로 내 모든 것을 내어놓고 있는지 고백하는 것이다. 안에 있는 것을 내어 놓아야 모든 것이 건강해지고 가벼워진다는 것을 되새겨본다. 숨기려고 하거나 지키려고 하는 것이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곧 세속적인 것이라면 그것에서 정화되고 깨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토큰 제도가 요구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이 있고, 다른 곳에서만 사용하는 토큰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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