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21주간 목요일(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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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코린 1,1-9 마태 24,42-51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삶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그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로마가 아직도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며, 죄는 번성했고, 의로운 사람들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가 곧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은 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믿음이나 생각은 어떤 지나가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 터미네이터도 여러 차례 돌아왔고, 배트맨도 돌아왔다. 심지어 시리즈물마다 다시 새롭게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들을 통해서도 우리 곁에서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주인공들을 만나왔지만 아직도 예수님은 보지 못했다. 너무 가벼운 생각일까? 여기서 한 가지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까?’ 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오심에 준비되어 있는가?’ 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종이 되지 않고, 언제 오시든지 그분을 평소처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자세가 오늘날 우리가 지녀야 하는 자세임에 분명하다. 흔히 하는 말처럼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매일 준비되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깔끔함을 생각해본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의 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내 생활을 돌아봐도 주님에 대한 증언으로 모든 면에서 은총에 은총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은연중에 나의 내면에는 주님께서 더디 오시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나에게 주어진 직무에 태만하거나, 내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거나, 다른 동료들을 괴롭히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드러내 놓고 나타나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자기 속임수에 빠져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면서 행하는 일일 수 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올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도와준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도 하느님께서는 풍부하게 은사를 허락해주시는 충실하신 분이시며, 마지막 날에 흠잡을 데 없게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궁극적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불러주셨다고 전해주고 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기다리는 모든 것의 종착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삶은 결국 주님의 은총 속에서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함께 계심을 살아가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시 오시기로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에 깨어 응답할 수 있는 오늘의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지금 내가 생활하는 곳이 잠시 지나가는 세상임을 자각하는 깨어 있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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