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9주간 목요일(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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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에제 12,1-12 마태 18,21-19,1

       

      용서는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선물이다.

       

      내가 입으로 고백하고 있는 대로만 살아도 성인은 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에는 성인되기가 쉬운대도 쉽게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정표나 사인을 놓고, 그것도 눈앞에 놓여 있는 표식을 놓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많은 이정표들과 기적들을 보여주셨다. 이것들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하며, 우리의 재능과 선물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좋은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 표징들을 언제나 이해하지 못했고 가슴에 간직하지도 않았다.

      여러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표징들을 알려주셨는데, 이 선택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되새겨 주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표징으로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의 행위는 그들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면하게 될 유배에 대한 경고였다.

      지난 주 봉성체를 다녀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 한 분 두 분 자리가 비워져 나간다는 것과 더불어 그 자리를 누군가 채워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르침도 아니다. 그러나 무게감이 있는 가르침이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위대한 선물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용서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면 이런 용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용서는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받은 용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용서를 하는 사람이나 용서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선물로써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랑과 용서라는 것은 절충하거나 조절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쉽게 만나는 일상생활 속에서는 본전생각이나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마음에 뿌리를 둔 철저한 악한 세력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의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의 눈에서 바보 같아 보이더라도 하느님의 눈에는 착하고 충실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살 궁리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 한 번 더 할 수 있는 오늘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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