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16주일(7월 18일)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237
    정하상성당

      창세 18,1-10 콜로 1,24-28 루카 10,38-42

       

      우리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시작에서 마침까지 그리고 영원히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과 관계를 갖는데 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느님께 열려 있음을 그들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세 명의 나그네를 환대하였던 것이다. 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누구든지 주님의 평화 속에서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손님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준비해 본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의 낯선 약속, 곧 정상적으로 아기를 갖을 나이가 지났고 버림 받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사라에게 큰 기쁜 소식인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바오로는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복음의 구원 소식을 거절당하는 모습이든,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의 고통을 기뻐하고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의 기쁨을 숭고한 삶의 가치로 여겼던 것이다. 마침내 복음에서 우리는 두명의 자매인 마르타와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주님과의 강한 관계를 양육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타는 다른 방면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봉사의 삶이 우선적으로 자리 잡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모든 생활의 구석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려본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자주 우리 자신의 일들에 너무 바빠서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체험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관계성 형성에서도 많은 이벤트와 결정들을 계획하기보다 첫 번째로 하느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삶의 모습으로 인하여 불평을 하거나 돌아서는 것은 신앙이 아니며 그분과의 관계성 유지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뜻과 하느님의 뜻은 반대일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과의 올바른 인격적 관계성을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바오로처럼, 마리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하느님의 기회를 포기하거나 놓치지 않도록 그분 앞에 나아가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보다 풍부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축복 속에 위치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을 우리 신앙의 깊은 자리에 놓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세상을 구원하려는 고통에 우리가 동참하면서 참 기쁨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신앙의 중심이신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도록 합시다.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