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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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탈출 3,1-6.9-12  마태 11,25-27

      이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주님을 만나는 모세를 보게 된다. 더우기 복음에서는 지혜롭다는 자들보다는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아버지의 뜻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복잡해질 수록 단순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복잡해지는 것이 맞는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복잡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릴적 ‘마라치 아라치’라는 만화 영화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해골 박사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는 더이상 육신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의 삶을 선택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아주 오래된 만화 영화에서도 그런 것들을 비추어줬다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 몸에는 ‘맹장’이라는 녀석을 만들어서 아프게 만들었을까?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데, 그런데 우리 몸에 필요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우리가 생활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들과 더불어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출발점을 잊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사용하시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깨어 준비되어 있다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지만 자신으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이 쌓아놓은 어떤 것들이 나를 가로막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느낌과 생각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할까요? 이성적인 연구 결과들이 있다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성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시는 방법은 나 자신의 모든 것에 한계성을 느낄 때라는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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