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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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에제 37,1-14 마태 22,34-40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랑이다.

       

      들어 올림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주님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된다. 들어 올림은 죽음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표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내용은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분임을 깨닫는 것이다.

      유대 성서학자 가운데 유명한 라비 힐렐이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토라의 전체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너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이웃에게 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전체 법이다. 나머지는 주석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어떤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지평은 하느님 사람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해주신다. 이것은 ‘복음 인자(DNA)’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로 태어나는 모습이며, 그 밖의 모든 법들과 규정들은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두 용해된다. 그래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가 사랑이라고 표현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말씀은 신명기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말씀이었다. 따라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의무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의무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며, 동시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사랑의 모습으로 인하여 죽었던 뼈로 비유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기를 얻고 숨을 얻어 무덤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논리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대형매장으로 인하여 소형 장사나 재래시장의 자영업자들은 죽게 된다. 모든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준비되는 국방력 증강으로 더욱 처참한 전쟁과 이기적인 행위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초적인 수칙을 모르거나 무시해서 불신과 어려움을 초래하는 어두운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지게 하려고 다가오는 바라사이들의 모습에서도 율법의 내용은 사라지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사랑의 느낌과 생기는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표현은 내 삶의 중심인 동시에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될 수 있는 향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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