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9월 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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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코린 8,1-7.11-13 루카 6,27-38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적에게까지 배려와 사랑을 위해 불림 받았다.

      주는 대로 받게 되고, 뿌리는 대로 거두게 될 것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느 특정한 순간에 주어지는 명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 순간 훈련해야 하는 과제다.

      한국일보 기사 가운데 <25가지의 후회들>이라는 글이 있었다. 오츠 슈이치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글이었다. 대부분은 호스피스 환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들로 가득한 글들을 소개하면서 오히려 보다 낳은 선택과 결정들로 삶의 키워드와 생의 마지막 리스트 제목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논지였다. “죽을 때 기뻐하는 오십 가지, 죽을 때 감사하는 백 가지” 등등.

      만약 내가 아무것도 할 도리가 없이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간다면, 이렇게 표현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어제보다는 안 좋은 컨디션이지만 내일보다는 오늘이 좋지 않은가!” 오늘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오늘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억울해서도 못할 일이겠지만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오해나 편견 그리고 그 밖의 갈등과 분열로 일축했던 삶의 어두움을 밝은 빛으로 바꿔 나가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작은 행위라도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사도 바오로도 말하고 있다. 더구나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원수나 적으로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비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아버지께서 자비롭게 우리를 대해주시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서로 성장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것이다. 내가 죽어서 어떤 사람으로 새겨질 것인지 생각해보면서 오늘을 살아보자. 내가 지금 못할 사랑과 용서와 배려와 자선이 어디 있으며, 더 이상 분열이 존재할 수 있는지 곰곰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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