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성녀 마르타 기념일(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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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요한 4,7-16 요한 11,19-27

      우리를 사랑하는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가 당신을 알고 당신의 거룩한 백성의 일원으로 형성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과 뜻에 더욱 깊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혹은 하느님을 더욱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경험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옹기장이가 흙을 사용하여 그릇을 만들듯이 우리가 어떤 존재로 태어났으며,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타는 자신의 오빠가 죽었지만 예수님께 신앙의 고백을 한다. 그녀의 고백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표현된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는 고백, 아울러 마지막 부활 때에 우리 모두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메시아로 오신 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신앙 고백으로 이어진다.

      요한1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은 생활 성가에서 나오는 잔잔한 내용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고백인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불림 받았으며,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바라는 사랑의 계명은 단순하게 누군가를 배려하고 용서하는 차원을 넘어서 하느님의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느님을 대하듯이 이웃을 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 당신의 모상을 담아주셨고, 우리가 잃어버린 모습을 아들을 통하여 되찾게 해주신 것이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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