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사순 제2주간 월요일(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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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다니 9,4-10  루카 6,36-38

      자비로운 마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내가 부모의 사랑과 자비를 받고 자랐다는 것을 감사한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에 대한 좋은 기억은 물론 서운함을 갖고 있는 것은 왜일까? 나에게 잘 대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면서도 불현듯 미워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이유는 왜일까? 사랑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면서도 삶 자체로 사랑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왜 모를까? 이런 부족분에 대한 답은 자신이라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할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비는 모든 것을 덮어주는 이불과 같다. 그래서 자비는 자비를 낳는다. 그리고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여러 가지 경험들로 체험했고 들어왔다. 과연 그렇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는 그의 전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한 가지 문제점들은 언제든지 알어날 수 있다. 그러나 표면으로 나타난 것은 심연의 아픔일 경우가 있으니 그의 죄는 단죄하되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판단과 결정이 가득하게 밀려온다. 한편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복잡한 흐름과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주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 있는 법정 곧 양심과 신정법의 정신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비를 청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서도,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어떤 상황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내꺼’라는 표현은 아이가 자아를 갖게 될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독점이 아닌 협력과 공명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자비로운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오늘 목록을 새롭게 작성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사용하는 순간 조금 더 그 이점을 누릴 뿐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나누는 삶을 보여줄 때 심판이나 단죄 대신 용서의 삶이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을 체험하는 오늘이 되어야겠다.
      사실 자비로운 마음도 ‘길’이 나야 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주 사용해서 통로가 생기면 더욱 쉽게 그것을 따라갈 수 있는 것과 같다. 표현을 입으로는 못해도 삶 속에서 길을 놓는 자비로운 하루, 하느님을 닮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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