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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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사도 3,11-26 루카 24.35-48

      수난 받아야 하는 그리스도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고통과 수고 수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일까? 특히 왕위나 특별한 자리를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그리스도는 수난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주님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가? 헨리 뉴먼이 말했듯이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려는 사람은 누구나, 마치 고통과 고난이 그로부터 비롯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그들의 영혼에 유익하고 고귀한 미덕인 것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많건 적건 고통을 겪었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가? 예수님 친히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12).라고 말하고 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시메온은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려도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루카 2,34-35)라고 표현하였다.

      빵을 나눠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우리의 양식일 뿐만 아니라 사명의 준비를 위한 배려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있는 순간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타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새롭게 담아주신다. 그것은 모든 민족들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선포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계속해서 설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횡포를 알려주고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리 잡는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수난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어두움을 들춰내어 근본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이끌어주려는 뜻이었다.

      이제 우리가 받은 세례를 들여다보자. 우리는 물과 기름으로 새로 태어났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서 죽었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 혹은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제직과 예언직에 동참하려고 불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사명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것이 활동적으로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만큼 수고 수난을 거부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은 모든 민족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사랑의 행위이며, 인내로써 구원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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