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제6주일(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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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사도 15,1-2.22-29 묵시 21,10-14.22-23 요한 14,23-29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

       

      지킴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환경지킴이가 그 대표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 자연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고 그것과 하나 될 수 있도록 그리고 후세에 좋은 것을 남겨주기 위한 모임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것이 돈을 받고 행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구조적으로 잘 못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물론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당연히 존중하고 잘 다스려야 하는 자연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철수라는 꼬마가 있었다. 그는 오후 내내 나쁜 행실을 했으며 그의 형과 싸웠다. 그것을 지켜보던 엄마가 공정하게 놀고 멋지고 착하고 예의를 지키면서 놀라고 애원했다. 마침내 철수가 엄마에게 와서 제안을 했다. ‘엄마가 1달러만 주면 착하게 될 거예요.’ 그러자 엄마는 철수를 보면서 반대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건너편 방에 있는 남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부끄러워해라 철수야! 저쪽에 있는 너의 아빠를 봐라. 그는 아무것도 안하니까 착한거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 그것에 대한 보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법 규율이나 규칙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의식 때문이라는 것을 되새겨 본다. 결국 사랑이라는 표현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선택인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어떤 좋은 일들이 보상을 받기에 충분한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행하는 것으로 인하여 무엇인가를 얻게 되는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가 주일 미사를 빠지지 않고 나오면 좋은 신자인가?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고 봉헌금을 많이 내면 훌륭한 신자인가?

      아니면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생각하고 사랑하고 행동하며 용서하는 관계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안에 머물고 있어야 진정한 신자인가?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표면 너머에 있는 것과 그분과 함께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를 후원하고 기도와 사랑의 행위를 계속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법과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를 올바른 행위로 인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어 하느님과 영원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것과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서로 보완적이며 힘을 주고받는 다리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행하는 선행이 아니라 내가 간직해야 할 것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그것이 내 안에 자리 잡혀야 평화와 더불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놀라운 사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깨닫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살아가는 오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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