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제5주간 목요일(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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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사도 15,7-21 요한 15,9-11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간혹 투명인간이나 어떤 보이지 않는 감시자로서 마법을 동원하더라도 중요한 만남이나 일들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일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생각에서다.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그런 부분을 체험할 수는 없겠는가? 예루살렘의 공의회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해 보고 싶은 충동 말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가? 오늘 이방민족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모세의 법을 준수하기를 바라는 모임에서 이 말씀을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통하여 되새겨본다.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주셨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초대 그리스도 신자들이 왜 이방민족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자신들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그들 사에게 구별을 두고 싶어 하는 근원적인 모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계속해서 말한다.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혹 이방민족들의 옛 관습을 주의해서 토론하였던 것이라면 그것도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라신 것이다.

      특권에서 모든 민족들에게로 넘어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초대 교회의 공동체에서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엄을 차리시는 분께서는 우리를 억압하고 겁주는 분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같이 있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면 그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연인처럼 우리의 모습은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우리의 모습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주님의 현존을 넘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께 대한 확신으로 우리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모든 직면한 문제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교회와 미래의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이끌어 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감시나 관찰자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참여자로서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성령께 의지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머물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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