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제2주간 월요일 200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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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독서 : 사도 4,23-31 복음 : 요한 3,1-8

      고비를 넘긴 후에야 새 마음과 눈과 힘이 생겨나듯이, 진정한 두려움을 알게 된 제자들은 ‘경외심’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두려움을 몰아내는 성령의 힘을 받게 된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를 바쳤고, 성령이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통해서 성령의 놀라운 작용에 또 한 번 놀라움을 표현하게 된다.

      복음에서 니코데모도 예수님의 표징들을 보면서 하느님에게서 오신 것을 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도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실체를 모른 것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없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해 주신다.

      문제는 이것이 부활의 삶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진정 그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세례 성사와 견진 성사로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보장 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성사의 힘도 필요 없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잠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과연 이 표현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로서는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지금도 소결론을 내릴 뿐이지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대신할까 한다.

      하느님의 속성이 물과 성령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해하기 전에 하느님은 자연철학 속에 담겨진 존재이며, 동시에 무한(無限)을 유한(有限) 한 틀 속에 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만이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변화’와 ‘실체변화’는 다른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변화를 한다. 그런데 그 속성이 변화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로 변화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소결론으로 내려 보는 것이다.

      두 가지 체험이 있다. 하나는 어제 잔치 집에서 경험한 마술 쇼다. 마술사는 자신이 눈속임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하였다. 과연 우리는 예상을 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렇듯 눈앞에 놓여 있는 무엇인가도 제대로 알아보고 듣기 어렵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 하나는 책 한권에서 한 줄 때문에 일주일 이상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려운 서적은 아니다. 소설책이만 그 표현이 너무 쉬우면서도 깊은 맛이 있기에 머물러 있는 것뿐이다. 이것을 통하여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맥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눈에 보이는 형상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진 속성으로 나아가기를 원해야 한다. 세례로 시작한 은총의 완성은 책의 시작에서 느껴지는 감흥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결론처럼, 물론 그 끝은 다를 수 있지만, 도달하려는 과정의 모습처럼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로 이끌어 들일 것이다.

      이제 각자의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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