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부활 제2주간 목요일(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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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사도 5,27-33 요한 3,31-36

       

      전달자의 삶과 받아들이는 삶

       

      나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실재로 주변의 이웃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이라는 이야기가 생겨난 배경을 보거나 우편배달부를 보거나 누군가로부터 오는 소식을 전하는 방식을 통하여 발신자의 뜻을 알게 된다. 사도행전을 통하여 나타나는 메신저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분께 대한 확신으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에 구원을 주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피에 대한 책임을 운운하는 비겁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신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하느님의 계획의 증인이 된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지도자들에게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뜻을 잘 받아들여 세상의 구석구석에 복음의 삶을 전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주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충실한 메신저는 주님의 자비적 사랑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의 모습 속에서 은총의 힘과 기도의 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요한 3,34). 그러나 요한 사도는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 소화불량 때문에? 오랜 신경성 질환 때문에? 또는 한 동안 먹지 않아서? 아마도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가 아닐까?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안에 사랑이 없어서가 아닐까? 믿음이라는 씨앗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주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활동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사도들의 증언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

      이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이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의 증인의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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