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음악가가 되려는 희망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베르디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친 것은 오페라 <나부코>부터였습니다.
베르디는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로
호평을 받았으나 다음 작품인 <왕국의 하루>를 작곡할 무렵
부인과 아들의 연이은 죽음을 겪습니다.
낙담한 베르디는 두문불출.
라 스칼라 극장의 주인 메렐리는 실의에 빠진 그에게
작곡의 의욕이 솟을 만한 대본을 찾았습니다.
메렐리는 <나부코>의 대본을
베르디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두고 왔습니다.
어느 날 베르디는 낯선 대본을 펼쳐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 내용은 구약성경 열왕기 하편에
나오는 것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잡혀간
유대 인들이 박해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속에서 조국을 그리며 자유를 구가하는 가사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붙여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된 <나부코>는
때마침 오스트리아의 압정 하에 있었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강력한 도전을 주었습니다.
포로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노예들의 합창’을 애국가처럼
불렀던 것입니다.
이 노래는 절망과 우수에 빠져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독립과 통일을 바란 국민들은 베르디를
애국적인 우상으로 삼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열광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 Daniel Kwak 옮김 –
로마의 노예 매매 — Selling Slaves in Rome / 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