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7,10-14; 8,10 히브 10,4-10 루카 1,26-38
당신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
어려운 기록경기들이 있다. 수영이나 육상이 그렇다. 그런데 깨질 수 없어 보이던 벽이 허물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그 벽을 쉽게 넘어서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누군가 그것을 했기 때문에 가능성이라는 것이 마음에 자리 잡히게 되는 것이다.
레지오 단원으로 선서를 할 때 선서문의 내용과 더불어 은총을 가득히 받은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성령께서 함께 계시어 충만하게 감싸주시기에 언제나 복된 상태를 유지하실 수 있었던 마리아를 떠올리게 된다. 오늘 순종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놀라운 신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작용으로 인간의 몸을 선택하신 것이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녀의 “예”라는 응답은 구원의 열쇠를 세상에 옮겨놓는 다리가 되었다. 물론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되었듯이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구원의 계획이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가 바라보는 시점이 아닌 마리아가 살아 있을 당시의 시점에서는 전혀 그것이 구원의 메시지로 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 쪽으로 경청을 선택한 마리아는 하느님 구원의 뜻을 수락하고 협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곧 ‘임마누엘’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처음의 어려움과 혼돈에서 믿음의 대답을 하게 된 마리아는 자유의지로 응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때 그것은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마리아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오셨다는 표현을 사용하실 근거는 바로 마리아의 응답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바로 아버지의 뜻을 듣고 응답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의 나에게 어려움이 보인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면서 어려운 대답이다. 바로 ‘믿음의 삶’이다. ‘주도권을 하느님께 넘겨드리는 삶’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골자라는 것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당신의 뜻’이 자리할 수 있다는 신비를 살아보자.
선택장애가 아닌 선택의 삶 속에서 주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나를 연마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며 믿음에 믿음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 부족하기에 주님의 성령께 매달리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나에게 언제라도 명하신다면 듣고 따를 준비를 합시다.
가야할 길을 잃거나 믿음에 의심이 생기거나 기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될 때 성모 마리아의 모습 앞에서 머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지침이 되어준 가르침처럼 우리를 자리 잡게 도와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