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주님 세례 축일(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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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이사 42,1-4.6-7 사도 10,34-38 마태 3,13-17

       

      세례를 통한 복음의 증인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나면 왜 뒤를 돌아볼까? ‘뒤에 눈이 없어서.’ 마땅히 어디로 가야할 것이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기 위해서 확인하게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은 누가 자동차를 두려워하며, 보행자를 두려워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곳의 법이 강력해서 혹은 오랜 자동차 문화 때문에 보행자 우선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다면, 어떤 자동차가 내 앞에서 느리게 운전을 하든지, 갑자기 끼어들 때는 왜 경적을 울리는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신호인가? 아니면 속에 있는 욕이나 화를 표현해도 잡아가거나 처벌할 사람이 없어서인가?

      어떤 어린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울면 밥 먹을 때가 안 되었으니 참으로가 얘기할 것인가? 아니면 주린 배를 달래주려고 노력할 것인가? 누군가 겁 없이 집에서 마실 물을 갖다 달라고 이야기한다면 ‘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떠먹으면 될 것을 왜 시키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이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가 생활하는 속에서 의로움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시작을 보면 끝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루어질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시작되었고, 완성에로 향하고 있음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며 성령으로 모든 일들을 완성하실 것을 보여주시는 날이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세상에 전달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기에 누구든 차별 없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베드로의 고백은 힘이 실려 있다. 주님께서 의로움으로 불러주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기에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었음을 기념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순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느님의 특별한 성령의 힘이 주어졌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철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회만 되면 적절한 구실을 둘러대면서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 생긴다. 주님의 파스카로 이루어진 성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각자가 충만하게 받아 모시고 살아간다면, 주님의 충실한 종, 겸손한 종, 마음의 드는 종의 모습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예수님의 세례 축일은 우리 자신에게 주어지는 세례의 은총에로의 초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신뢰의 선택이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물에 들어가심으로써 세례수를 거룩하게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통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도 같은 성령의 도유와 새 생명을 받아 누리게 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답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정의와 평화와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나누는 종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제 세상의 죄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답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지위를 새롭게 되새기며 주님의 세례를 통한 하느님의 의로움이 우리 안에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거듭남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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