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주님 공현 후 화요일(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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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1요한 4,7-10 마르 6,34-44

       

      세상과 나눌 하느님의 사랑

       

      권력의 결정판은 돈만이 아니다. 그것은 힘의 논리에 중독된 또 다른 세상이다. 그 속에 허영과 욕심이 함께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덫에 걸려들면 욕하면서 배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 속에 섬기고 봉사하는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사랑밖엔 난 몰라’ 라고 호소력을 나타내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정말 사랑을 알게 되면 그것을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 사랑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을까? 오늘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말하는 요한 1서의 저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난 뒤에 고백하며 살아가는 선포자로 등장한다. 그 사랑의 모습은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분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살게 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하느님의 자리에서 우리 인간의 세계로 내려오신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이 겸손도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심에서 오신 것이다. 이 사랑의 실천은 봉사로 표현되는 섬기는 삶으로써 세상 모든 것과 나누게 될 그분의 뜻을 증거하는 것이다.

      오늘 기억하게 되는 엘리사벳 앤 시튼 성인은 우리에게 익숙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나타난 가난한 이들, 굶주린 이들에게 사랑과 친절과 존경과 연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실제로 사랑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깨달은 사람의 행동을 보여준, 곧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길을 실천한 성인이다. 가난한 이들, 우리보다 덜 행복한 이들, 모든 사람들에게 지녀야 하는 숭고한 직무를 보여주고 있다.

      지칠 줄 모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시튼 성인을 소개하고 싶다. 사랑으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베푸신 뜻은 서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굶주림을 없애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나눌 것이 많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오늘 실천하게 될 사랑의 모습은 특정 시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지속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소중한 재산임을 잊어서도 안 된다. 누구든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사랑해주신 예수님과 모든 성인들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면서 모든 이들과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오늘이 되어보자. 그 사랑의 실천은 겸손한 봉사자의 모습, 종의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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