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한 3,22-4,6 마태 4,12-17.23-25
우리 곁에 있는 하느님 나라
성호경으로 기도하거나 다른 어떤 모습의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주님의 능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기쁨이요 자랑거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에게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모든 결과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하여, 완성에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행하고 있기에 우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시는 분이 우리 편에 계시다고 요한1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으로 드러낸다고 해서 총칼이나 기타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속에서 언제든지 있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위협의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의 신앙에 반대되거나 유혹하거나 방해하는 요인들은 충분히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은 시공의 한계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총의 선물이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은 모든 역사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드러난다.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은 선포로 시작된다. 그것은 당신의 말씀이 거짓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건이 된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말씀은 3세 교부 치뿌리아누스에 따르면, “하느님의 왕국은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그분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심”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비롯하여 그분께 속한 것인데 그 표현과 받아들임의 차이로 반대의 모습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나라가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가까이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선포된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좁은 의미에서 회개는 슬퍼하며 죄에 대한 보속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면서 회개하라는 뜻은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욱 넓게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평생을 두고 아버지의 부르심에 따라 거룩하도록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방향을 맞춰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교회를, 구원과 사랑과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평화를 위한 증거자로서 불림 받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행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