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주님 공현 후 목요일(1월 6일)

Viewing 1 post (of 1 total)
  • Author
    Posts
  • #1392
    정하상성당

      1요한 4,19-5,4 루카 4,14-22

       

      하느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보답하기

       

      우리가 무엇인가를 살 때, 예를 들어 과일이나 야채 혹은 그 밖의 생필품을 구입할 때, 선별하려는 기준을 갖게 된다. 그것은 좋은 것을 제값 혹은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본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후천적으로 학습된 어떤 작용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구별하는 속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선택받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것이다. 모두가 상품성을 갖고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받지 못한 것들은 영원히 폐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계성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통쾌한 해답을 요한 1서에서 제시하고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든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이 얼마나 힘이 있는 답변인가!

      늘 하시던 대로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통하여 선포된다. 희년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시러 오신 예수님의 사명은 성령 속에서 퍼져나간다.

      조금은 엉뚱한 예화를 들어보자. 매우 위험한 지역에서 살던 과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보호해주며 동반자로 살아가던 개가 독극물을 먹고 죽었다. 다른 개를 구하기 위해서 농장에 애완동물 가게에서 작은 강아지를 사왔다. 그 개는 엄청난 속도로 컸으며, 그전에 같이 있던 어떤 동물보다 더욱 특별하게 그녀를 지키며 동행했다. 19년이 지난 뒤 그 과부는 이사를 하기 위해서 수의사의 허가를 받으러 갔다. 그러자 수의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동물이 늑대라는 것을 아십니까?”

      물론 야성을 길들인다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과부의 사랑으로 늑대의 모습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해 낸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특별한 대우로 늑대를 길렀다. 그것은 야생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늑대이지만 늑대 속에 담겨진 부드러움을 본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하느님께서는 각각의 인간에게 고유한 재능과 모습들을 주셨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인도 속에서 양육되면,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 맞도록 충만한 삶의 모습을 체험하게 도와준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되는 것이다. 바로 하느님 안에서 알고, 사랑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충만해져서 누구에게든지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임을 잊지 말자. 마음을 열고 주님의 사랑에 응답함으로써 두려움을 몰아내고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삶을 시작하는 오늘이 되어보자.

    Viewing 1 post (of 1 total)
    • You must be logged in to reply to this 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