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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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신명 30,15-20 루카 9,22-25

       

      십자가의 길은 사랑의 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했다. 그 속에서 느꼈던 것은 믿음에 대한 불신으로 잃게 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체험될 수 있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여정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되짚어 보아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이 그렇게 쉽지만도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쉽게 대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진정한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자기를 버리고 회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 바로 어제다. 그리고 오늘은 그 여정의 도구로써 십자가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매일 새롭게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의 글을 통하여 묵상해보자. “내일 또 다시 같은 죄를 범할 텐데 오늘 죄를 용서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오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데만 온통 관심이 있으시기에 내일의 죄는 결코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십자가는 오늘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을 은총에 대한 묵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다. 그분께서 가신 길을 따라 나서는 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임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프로선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 그것은 사랑의 실천을 넘어서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모습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리 잡아 본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런데 너무나 쉬운 진리, 어린이들도 쉽게 깨우치는 진리이지만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십자가의 길이다. 그러나 이 길만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길이며, 아버지와 화해하는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사명을 참되게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가 좋은 사람이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삶의 모습은 나 자신을 넘어서 하느님께 도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 삶의 모습에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큰 영향을 끼친 20세기의 신학자 발타사르의 글에서도 이것은 드러난다. 그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은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쓰고 있다.’(Love Alone is Believable; Father John Cihak, Ignatius Press). 그리고 이것은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근본적인 것 – 요한 복음사가가 말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 4,8)의 증거가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계명에서 드러난 역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우리가 매 순간 만들어 내는 자신의 형상에서 벗어나도록,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의 모습을 담을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랑의 길로 나아가도록 오늘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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