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빛이신 예수님
지난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불편함을 간직하게 되었다면 진심으로 뉘우치며 화해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시간도 없을뿐더러 지금이 바로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희망의 빛이 세상에 전해지는 순간입니다. 그 빛은 세상의 어둠을 밝혀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이사야가 이야기한 대로 모든 이들에게 기쁨의 수확과 자유의 등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아기에게 주어지는 이름은 왕권과 주권을 노래하게 되는데,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모습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신앙인의 공동체 안에서도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불행하게도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제자들의 무리인 우리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하는 모습과 관습 때문에 믿음의 대상인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경우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의 결정체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 빛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오늘의 사건이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듯이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라는 빛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은 어려운 속에서 탄생하게 되었고, 그 선포도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전해진다. 그들에게 선포된 표징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였다. 형제인 소와 자매인 양들의 식탁인 구유에 오신 아기였다. 보잘 것 없는 삶의 구석에서 주님의 약속의 빛이 비춰지는 것이다. 목동들은 밤에 더욱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이리와 늑대로부터 양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잠들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견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주님의 천사들이 나타나 하느님을 찬미하게 된다는 것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단순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서로에게 주님의 선물을 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기쁨 속에서 우리의 대림의 여정은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의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내어 놓는 열린 방을 살펴본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초대를 하는 열린 문이라는 것을 그려본다. 이것이 우리에게 뜻밖에 주어진 기쁨의 선물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는 말씀처럼, 어둠 속에서 빛이 세상에 찾아들게 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기쁨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의 기쁨인 동시에 우리가 당신의 기쁨임을 알게 도와주신다. 그러기에 천사들의 노래는 더욱 우렁차게 나의 노래가 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감사합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오늘 이 시간 당신 안에서 기뻐합니다. 진정한 구원자이신 빛이신 당신을 내 안에서 찬미합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