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8주간 화요일(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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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35,1-12 마르 10,28-31

       

      뜻이 있는 희생

       

      짝패라는 한국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다. “노루는 사향 때문에 배꼽이 물리고, 표범은 아름다운 문향 때문에 가죽이 벗겨지듯이, 나는 미모 때문에 힘이 들 줄 누가 알았겠소.” 훈장 댁 여식이 자신을 괴롭히는 양반 도령에게 쓴 글이었다. 재미있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에게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있는지를 깨닫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희생을 봉헌하게 될 때 그 모든 가치는 물론 그 행위도 쉬워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동시에 우리의 모든 것이 빈손으로 버려지지 않는다고 알려주신다. 사실 누군가를 방문하게 될 때 아무 준비 없이 찾아가게 되면 왠지 부끄러워지는 것처럼, 주님께 나아올 때는 주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실천함으로써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준비하라고 가르쳐주신다. 그것은 세세한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뒤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진정한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에 휘둘리지 않는 은총은 물론 백배가 넘는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된다는 약속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게 될 때 느끼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겉으로는 타인을 위해서 봉사했다고 하지만 실재로 나에게는 충만함이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전적으로 모든 것에는 이기적인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행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되며, 주님께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

      조건이 있는 선물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분에게 돌려드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관계성 속에서, 대가 속에서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권력과 특권에는 부과되는 책임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짐을 원하는 사람이 그것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에 맞도록 방향 지워져야 한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충만하게 희생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지상에서의 우리의 제한적인 조건에서 실천하게 되는 의미 있는 희생을 통한 주님의 계명의 실천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몫을 남겨두지 않고 그분을 따르려는 희생의 정신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희생을 통하여 심장마비나 어려운 시간에서 해방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축복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결국 우리의 진정한 희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 넘어 더욱 풍요롭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축복임을 고백하는 하루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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