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8주간 금요일(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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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44,1.9-13 마르 11,11-25

       

      성전의 정화로 우리의 삶의 부스러기를 치워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 대한 불만이 진실 되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행동에서 비난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자리에 대한 도전을 못견뎌했고, 자신의 모습을 고치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게 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린 강아지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던 어두움은 없었는가? 빛과 어둠의 대조 속에서 번번이 갈등하는 모습은 없었는가?

      오늘 복음에서 사건에 꼬리를 무는 사건을 보게 된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한편 예수님과 무화과나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약간은 생소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오늘 복음을 있는 그대로 읽고 만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으로 마무리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의 가르침을 통하여 특별하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는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행위라고 특징 지워질만한 것들과 거리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의 배경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무화과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종종 그들의 작품에서 써왔듯이 이스라엘 민족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는 성서학자들이 제시하듯이 유다 민족들의 신앙심의 결여에 대한 그분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그것의 절정이 성전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텅 빈 신앙의 생활이었다.

      오늘 성전을 정화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루카 12,49참조)의 예언자적인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서 있는 성전은 유배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재건했던 정밀한 것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그들의 삶에 중심에 두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더럽히도록 방치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예언자적인 행동을 통하여 백성들이 주님께 진정한 봉헌의 삶으로 돌아서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다가온 어떤 기쁜 소식을 발견할 수 있는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 그리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에 간격이 생기면 일차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학문을 공부해야 하는가? 언행일치가 깨진 상태의 혼돈을 무엇으로 매울 수 있겠는가? 정직하게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살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의 광고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 곧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실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의 불태움을 살아보자. 그것은 하느님의 왕국을 위한 열매를 맺는 것이고, 이로써 그분께서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허비하거나 결실을 맺지 못하는 모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 일차적인 단계로 우리의 생활 속에 부스러기들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자. 그리고 우리가 맺을 하느님 사랑의 열매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매 순간 깨어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보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판공성사때가 아닌 자신의 시간을 갖고 고해성사를 임하는 신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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