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7주일(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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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레위 19,1-2.17-18 1코린 3,16-23 마태 5,38-48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까?

       

      익숙해질 만큼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내 주변의 모습과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적응하고 있으며, 무엇이 새로워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간식으로만 생각하였던 것이 주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유창해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고 있는 문화와 언어,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터득되어지는 지혜가 아니라 습관처럼 흘러가는 시간이 그것이라면 일찍 깨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표현이 내 안에 체득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해 진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말씀들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성에 반대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남을 대하는 모습의 사회적 통념으로 인하여 모순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원수를 맺으면서 살아가거나 원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는 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모든 조건 속에서도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테러를 통하여 사람들이 죽어갈 때, 그 피해자의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들 스스로도 살인으로 되갚으려는 악한 행실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아닐까? 보복을 위한 처절한 상황은 물론 보복을 하였다손 치더라도 무엇이 그들에게 위안이 될까?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도 화해와 용서의 공간을 스스로에게 만들어 두는데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문화가 아닌 용서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가깝게 살아가기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불안과 불만과 불신이 자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원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거룩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불러주신 하느님이라는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서 깊이 느끼게 된다. 특별히 우리를 거룩하게 되라고 불러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뜻을 듣게 된다. 그것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면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어떤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을 뜻한다. 곧 우리의 개인적인 욕망을 치워두고, 하느님을 우리 삶에 최 우선권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분의 자비와 관대함을 배우고, 화를 억제하고 사랑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삶을 말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모든 사람 – 우리의 원수까지 포함해서 –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렵게 느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도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용서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이로써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거룩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그 대로 우리도 행동할 수 있는 거룩함의 용서를 실천하는 한 주간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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