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7주간 월요일(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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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1,1-10 마르 9,14-29

       

      예수님의 완벽한 연민 따라가기

       

      누구나 역경이라고 표현되고, 십자가라고 표현되는 무게가 있다.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주님께 의탁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 속에서 놀라운 체험과 더불어 겸손과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위로를 체험하셨고, 성령의 도움으로 모든 악령들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함께 치유해주셨다. 여기에 큰 위안이 자리하며 우리가 따라갈 방향성이 잡힌다. 그것은 우리의 고통을 함께 해주시는 예수님께 대한 깨달음과 고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타리나와 쓰나미 그리고 올 겨울 세계를 강타한 눈 폭풍,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재앙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위해서 안타까워하며 가슴 아파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가난하고 나이 든 과부의 적극적인 동참이라는 반응은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든다. 그것은 돈이 없어서 그곳에 보내지는 못하였지만 매일 기도로 그들을 기억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도움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난다면 혹은 철저한 분석과 미래를 향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만족이나 의무적인 선행으로 머물고 만다. 또 다른 모습으로는 구제를 위한 펀드를 조성해서 사람들의 도움의 창구가 될 수 있도록 꾸미는 경우도 있다.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상황 속에서 우리들의 다양한 동참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손길이다.

      첫 번째 사람은 그저 동정심만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뒤의 두 부류의 사람은 시간과 재능과 재화를 희생하면서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연민과 동정심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동정심은 다른 사람의 재난에 대해 느끼는 슬픔의 감정 또는 표현을 말한다. 그러나 연민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깊은 동정을 포함하면서 물품이나 도움의 손길과 자비를 베풀려는 성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연민을 깊이 묵상하고 닮아가야 한다.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었던 대표적인 연민의 실천자였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수님의 연민에 대하여 사랑스럽게 요약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아픈 이들을 치유해주셨다; 고민하는 이들을 위로하셨다;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귀머거리와 눈먼 이들과 나병환자와 악마와 다양한 신체적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셨다; 세 번이나 죽음 이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분은 인간의 고통에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민감하셨다.(Apostolic Letter Salvifici Doliris, February 11, 1984).

      이제 신앙인인 우리가 배우게 된 것은 단순하고 자연적인 동정의 성향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활동 속에서 그리스도의 연민을 닮도록 불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한 충실한 기도와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모든 도움의 손길을 관대하게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는 오늘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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