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7주간 목요일(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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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집회 5,1-8 마르 9,41-50

       

      때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두려움

       

      우리는 생활 속에서 두려움을 통해서 혹은 배움을 통해서 성장해 왔다. 어린 시절 열기구나 불 또는 위험한 곳에 대한 충고를 들으면서 자라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들을 어린 친구들에게 말해주곤 한다. 그것은 건강하고 유용한 정보임에도 이것을 어기게 되면 호된 교훈을 얻게 되거나 다치게 된다. 따라서 때로는 작은 두려움이나 배움에 대한 존경은 우리를 깨어 있도록 도와주며, 특히 하느님께 의탁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가르쳐 준다.

      흔히 ‘수도자는 귀만 하늘에 가고, 신부는 입만 하늘에 가며, 평신도들은 발만 하늘에 간다.’는 말이 있다. 어찌 되었든 하늘나라에 어느 부분이라도 들어간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실생활 속에서 이것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상황들은 계속해서 다가온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믿고 있었던 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요행을 바라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죄를 용서하시러 오신 주님께서는 나의 죄까지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무지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의 인자하심도 크지만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미루거나 늦추지 않고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듣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주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답게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계명과 길을 따라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무가치를 알려주시고, 우리의 죄를 단호하게 정화할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다져본다.

      각자의 정체성을 돌아보면서 나는 못할 수 있지만 우리, 곧 교회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고 개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구체적으로 개인의 구원을 원하신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아울러 공동체 안에서 그 구원은 확장되며 더욱 쉽게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힘이 되는 동시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두려움을 갖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성령의 작용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죄를 피하도록 도와주며, 우리가 찬양해야 할 하느님을 바라보게 도와준다.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행복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는 하느님의 나라며 우리 자신의 부와 힘과 권력이 아니라는 것을 식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스며드는 자아의 무한한 극대화는 하느님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얻어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꾸준히 진행되는 회개의 삶 속에 자리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괜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놓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경각심을 확인하면서 죄를 피하는 오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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