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5주간 금요일(세계 병자의 날.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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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창세 3,1-8 마르 7,31-37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의미

       

      고요함 속에 찾아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묵상이나 기도 방법에서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하느님께서는 고요한 미풍 속에서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도 언제나 혼자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다고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고요하게 머문다든지, 침묵 속에 있는 것이 어려운 조건으로 들릴 수 있다. 스마튼 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의 삶의 모습은 편리한 것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의미는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피조물 가운데 가장 간교한 뱀에게 넘어간 여자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며 숨어사는 사람이 된다. 이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은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가장 유혹적인 요소들 속에 우리의 죽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을 비난하면서 나는 그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갑갑함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의 말씀이 전해진다.

      군중에게서 따로 분리시켜 귀와 입을 열어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조금 더 당신의 법과 뜻을 되새기면서 우리 안에 사랑의 법을 실천하고, 아버지의 뜻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버림과 떠남의 실천이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고통이 아닐까? 오히려 세상의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들과 가치들이 우리들의 눈과 귀와 입과 마음까지도 병들게 하고 닫아버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오늘 교회는 아파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날로 정해놓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겪게 되는 원죄의 결과로 세상에는 고통과 병듦과 죽음이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추락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일치와 원천적인 조화를 회복하기 위한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신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처럼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사건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세상의 치유와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신다. 오늘 치유를 받은 이는 자신의 고통의 치유를 기뻐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로써 고통과 병을 통하여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다. 우리 자신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다가오는 원조의 결과들, 곧 병듦과 아픔과 시련과 고통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는 의지적 노력으로써 오늘 화해의 기도와 치유의 기도를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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