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4주일(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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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예레 1,4-5.17-19 1코린 12.31-13,13 루카 4,21-30

       

      사랑, 그 위대함의 승리

       

      내가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것은 혹은 제일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일 수 있다. 그런데 옛말에 ‘안빈낙도’라는 표현이 있듯이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삶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임을 생각해본다. 옛날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마을에 성년식을 치르게 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밤에 마을의 전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밤새 그곳에서 혼자 남아 있어야 했다. 그 소년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을 쓰면서 볼 수 없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잠이 든 소년에게 새벽의 여명이 찾아온다. 그 소년은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자연 숲을 지나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는 밤새 숲에서 자식을 위협하게 될 무엇인가로부터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곳에서 밤을 지센 것이다. 빛이 밝아올수록 더욱 분명해진 삶의 모습을 통하여 그 소년은 비로소 성인이 되는 삶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역경들은 우리가 해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성령의 도움과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는 여정임을 알아야 한다.

       

      예레미야는 태중에 생겨나기 전부터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존재로 나타난다. 즉 하느님의 대변인으로서 예언직을 선포하게 될 것임을 장엄하게 선포 받는 것이다. 옹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기 전에 미리 형상을 생각하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 왕국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거부당하는 하느님 나라를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의 형식으로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증언으로 겪게 될 어려움에서 주님 친히 지켜주시게 됨을 확증 받는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머무는 한정된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분으로 선포된다. 그러나 그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다시 하느님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들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함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이것은 코린토 후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더 크고 높은 선물을 얻으려고 애쓰는 삶 때문에 사람들끼리 다투는 질투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의 삶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보다 큰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그 대답을 받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변함없이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진정한 덕이 되는 것이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설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것은 사랑의 계명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적인 조건들로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힘을 발휘하는 것임을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님의 성령이여, 저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힘을 키워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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