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Mass 연중 제33주간 월요일(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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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상성당

      묵시 1,1-4.5; 2,1-5 루카 18,35-43

       

      우리의 희망이신 주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게 되면, 그 순간부터 순서대로 뒤로 밟아 나가면서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나아가 들면서 차츰 손에서든 정신에서든 놓치거나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어쩌면 슬프기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만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심으로 잘 살아온 공동체에게 한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따라서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다보면, 대체적으로는 큰 탈 없이 지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나타날 때가 있다. 그것은 내 생활의 규칙성 속에서 나타나는 매너리즘일 수 있고, 그와 반대로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무료함일 수 있다. 똑같은 일의 반복 속에서 항상 싱그러운 마음과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일 새롭게 혹은 은총 속에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러기에 처음에 지녔던 열정이 다시 일어나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흔히 죽음을 경험하였다가 살아나거나, 어려운 처지에서 일어나게 되었거나, 하느님과 흥정을 했거나, 기타 등등의 극한 체험을 한 경우에 나타나는 두 번째 삶에 대한 열정과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런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을 찾을 때의 간절함은 어디에 있었고, 지금의 나는 그렇게 간절하게 주님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거나 피정을 할 때의 자세와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와 있을 때의 나의 모습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식 때문에 주어지는 자기 꾸밈의 모습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주님을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자신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주님에게서 떨어뜨리려는 악의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내면의 진실을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영혼의 눈이 멀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다. 그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자비를 청하면서 다시 볼 수 있게 청하는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볼 수 있는 혜안이 자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성령께 청해야 한다. 그것도 간절히 주님을 불러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나타난 소경의 외침이 나의 외침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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